- 나는 과연 믿음이 있는가?(민14:6-10)
- 제가 몇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마음으로 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 ① 나는 교회에 오래 다녔지만 구원, 믿음, 교회, 기도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안다. 모른다.
- ② 나는 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다. 없다.
- ③ 나는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을 만난 적이 있다. 없다.
- ④ 나는 삶에서 영적인 사람이다. 아니다.
- ⑤ 자신의 가치관이 신앙생활을 하기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다르다.
- ⑥ 삶에 기쁨이 없고 항상 불안하다. 불안하지 않다.
- ⑦ 나는 천국이 있다고 믿는다. 없다고 생각한다.
- ⑧ 나는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의 개념을 확실히 안다. 모른다.
- 위의 질문에서 긍정과 부정의 개수가 어느 쪽이 더 많습니까?
-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경과 교회가 가르치는 중요한 주제들에 대한 확실한 개념을 이해하고 다녀야 합니다.
- 뿐만 아니라 그 주제에 대하여 확신이 없다면 확신을 찾아야 합니다.
- 두루뭉술하게 신앙 생활하는 것은 교과서를 알지 못하면서 학교에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 학생의 실력은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고, 신앙인은 성경과 기독교의 핵심주제를 바로 알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위험하며,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 오늘은 믿음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려 합니다.
- 믿음은 무엇일까요? 본문을 중심으로 연구해 보겠습니다.
- 1. 믿음은 말씀에 대한 확신입니다.
- 본문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여 언급을 안 해도 잘 아실 것입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열두 정탐꾼을 파송한 결과 40일 후에 귀환한 12명 중에 10명의 확신 없는 입장과 보고로 인해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동조한 200만 명은 모두 광야에서 죽고, 그들과 입장과 태도를 달리한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 여기서 신앙과 불신앙의 차이는 가능성에대한 확신과 불 확신의 차이였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목표에 대하여 의심하지 말고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 그것이 참 믿음입니다. 히브리 기자는“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히11:1)고 하였습니다.
- 학문 중에 가장 높은 학문을 우리는 철학이라고 합니다.
- 철학은 인간과 사물의 본질, 근본원리, 사유, 직관, 인식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 철학에는 형이상학이 있고, 형이하학이 있습니다.
- 형이상학은 인생관, 세계관, 신조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형이하학은 형체를 갖추고 있는 것들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형이상학은 추상적 개념을 다루고, 형이하학은 현상적 개념을 다룹니다. 철학은 어디까지나 인간에 대하여 말하는 학문입니다.
- 철(哲)자가 밝을 철자로서 인간의 도리에 대하여 밝게 안다는 뜻입니다.
- 형이상학 위에 있는 학문은 신학(神學)입니다. 신학은 귀신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고 초월자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인간의 이성너머에 존재하는 존재를 인간들은 신이라고 합니다.
- 이 존재를 연구하는 학문이 신학입니다.
- 신학은 종교학과 관련이 있고, 신에 대한 변증학도 중요합니다.
- 신이 있다고 믿는 것을 유신론라고 합니다.
- 신이 없다고 믿는 것을 무신론이라고 합니다.
- 신의 존재에 대하여 알 수 없다는 학문이 불가지론입니다.
- 기독교는 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입장이며, 그 신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 여러분들도 그렇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은 인간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흥망성쇠의 주인이 되십니다.
-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한 것을 자연계시와 특별계시로 분류하며 특별계시의 하나님이 자신을 확실하게 드러낸 계시를 우리는 성육신 사건이라고 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사건이야 말로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절정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결정판이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건과 말씀을 기록한 책이 성경입니다.
- 우리는 성경을 절대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며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는 유기적 영감에 의한 책으로 믿습니다.
- 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하는 핵심주제는 믿음입니다.
- 사실 믿음은 철학에서 말하는 형이상학적 개념이며 추상명사입니다.
- 원론적으로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지만 각자에 따라 믿음의 분량이 차이가 많습니다.
- 열 명은 믿음이 없었고, 두 명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두 구릅의 차이는 가능성에 대한 확신의 차이입니다.
- 이스라엘백성을 출애급 시킨 것은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국가를 세우고 행복하게 살게 함입니다.
-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은 구속사의 완성을 위한 지상 국가를 만드려 한 것입니다.
- 그 나라에서 예수님이 태어나고, 성경이 기록되고, 성령운동이 일어나고, 교회운동이 일어나며, 복음전파가 시작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후손들은 그 땅으로 데려 가는데 많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하여 믿음을 갖지 않았습니다. 즉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은 것입니다.
- 결국 그들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들 가정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 우리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통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 그 섭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긍정하고 부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 열 정탐꾼과 같이 행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 그런 사람은 비전을 성취하고, 희망을 달성하며, 꿈을 이루고, 축복의 주인공이 됩니다.
- 우리 주님은 “의심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였습니다.“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하느냐?”고 하였습니다.
- 우리는 가능성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은 명사가 아닙니다.
- 믿음은 동사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 각자에게 주신 꿈에 대하여 조금도 의심 없이 믿고 의지할 수 있기 바랍니다.
- 2. 믿음은 말씀에 대한 고백입니다.
-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 열 명은 “가나안을 점령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과 싸워봐야 진다. 그들에게는 무기가 있다.
- 우리들은 그들에 비하며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한 장관을 정하여 애급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 사람이 말에 의해 움직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구원을 받습니다.
- 축복을 받습니다.”라고 할 때 믿음이 생깁니다. 내가 “여러분 예수 믿어봤자 헛것입니다.
- 교회 다녀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그렇게 말하면 여러분들의 믿음은 떨어지고 말것입니다.
- 말에는 각인력, 견인력, 전염력, 성취력이 있습니다. 말의 힘은 무섭습니다.
- 우리는 언제나 언어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 의심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과 타인을 실패하게 하고,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불신언어는 마귀의 언어입니다.
- 열 명의 불신언어가 전파력이 강해 200만명의 축복을 빼앗아 습니다.
- 우리는 언제나 가능성에 대해 긍정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 부정적인 언어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은 단명합니다. 하던 일이 망합니다.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합니다.
- 자신의 인생이 불행해 집니다.
- ① 배호는 『돌아가는 삼각지와 안개 낀 장충단공원』만 부르다가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 ② 권혜경이나는 『산장의 여인』이 18번인데 그 노래만 부르다가 산장에서 살다 죽었습니다.
- ③ 윤덕심은 『사의 찬미』만 불렀는데 자살했습니다.
- ④ 『수덕사의 여승』을 불렀던 송춘희는 결국 사찰에 들어가 여승이 되었습니다.
- ⑤ 이난영은 『목포의 눈물』만 불렀는데 결국 49살에 슬픈 인생의 막을 내렸습니다.
- ⑥ 양미란 『흑점』을 부르다가 골수암으로 죽었습니다.
- ⑦ 박애경은 『곡예사의 첫사랑』을 불렀는데 53세에 폐암으로 죽었습니다.
- ⑧ 장덕은 『예정된 시간』을 부르고 죽었습니다.
- ⑨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른 차중락은 그 노래 부른 후 낙엽처럼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 ⑩ 『우울한 편지』를 부른 유재는 결국 우울하게 죽었습니다.
- ⑪ 『세상은 요지경』을 부른 신신애는 사기를 당해 그야말로 요지경 인생을 살았습니다.
- 반대로 ⑫ 『만남』을 부른 노사연은 이무송이를 만나 잘 살고 있습니다.
- ⑬ 『저푸른 초원위에』 부른 남진이는 인생이 활짝 퍼드러졌습니다. 새에덴교회 장로입니다.
- ⑭ 『쨍하고 볕들 날 돌아온단다.』를 부른 송대관은 그 인생이 활짝 폈습니다.
- 인기가수는 한 곡을 5,000회-6,000회를 부른답니다.
- 그 가사에 뇌에 각인되어 결국 그런 인생을 살게 된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 시인 중에 기형도 시인은 연대를 나와 일약 한국 문단의 대표적인 시인이 되었는데 모든 시가 어둡고 침울한 언어로 가득합니다. 결국 28세에 뇌졸중으로 죽었습니다.
- 우리는 말이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말을 명심해야 합니다.
- 첫째, 거짓말을 하지 말자.
- 둘째, 안 된다는 말을 하지 말자.
- 셋째, 아이고 죽겠다. 하는 말을 하지 말자.
- 넷째, 나는 망 하겠다 하는 말을 하지 말자.
- 다섯째, 못한다는 말을 하지 말자.
- 여섯째, 의심하는 말을 하지 말자.
- 일곱째, 남을 선동하는 말을 하지 말자.
- 여덟째,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자.
- 아홉째, 이죽거리는 말을 하지 말자.
- 열 번째, 저주하는 말을 하지 말자.
- 이런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 말이 자신의 운명을 옭아맵니다. 그 말은 마귀와 사단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언어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 첫째,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 둘째, 나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할 수 있습니다.
- 셋째, 나는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할 수 있습니다.
- 넷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 다섯째, 우리는 잘 됩니다.
- 여섯째, 나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 일곱째, 지금은 힘들어도 앞으로 잘 될 것입니다.
- 여덟째,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 아홉째, 하나님은 내편입니다.
- 열 번째,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 이런 언어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이런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도와주십니다. 축복하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가능성에 대하여 가능하다가 고백하고, 하나님이 성취해 주신다고 고백하며 사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해 주십니다.
- 3. 믿음은 말씀을 믿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 갈렙과 여호수아는 처음부터 믿고 행동했습니다.
- 사람이 어떤 일을 시작할 때부터 믿음으로 출발하는 사람이 있고, 의심하며 시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 두 사람은 가나안을 정탐하러 가기 전부터 하나님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 그들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지 않았어도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입니다.
- 가나안 땅을 정탐한 것은 한 번 더 확인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일을 해도 하나님편입니다.
-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찬성합니다. 모세편이고 이스라엘 편입니다.
- 이런 사람은 죽어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며 죽습니다. 이것이 참 믿음입니다.
- 10명의 정탐꾼들도 두 사람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행동했어야 합니다.
- 그동안 하나님의 능력을 수없이 보아왔지 않습니까?
- 애급에서 열가지 재앙, 홍해도하, 마라에서 쓴물을 달게 한 사건, 엘림의 열두 우물과 70종려나무, 르비딤에서 아말렉과의 전투승리, 그리고 시내산에서의 십계와 율법, 성막제작과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습니다.
- 그런 사건을 경험한 그들은 더 이상의 무슨 이적이나 증거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 그냥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믿고 따라갔으면 됩니다.
- 그런데 가나안 땅을 보고 와서 이전의 하나님 능력을 모두 잊었습니다.
- 하나님의 하신 일들을 부정했습니다.
- 백성들은 선동하고 부화뇌동하게 하였습니다.
- 나쁜 여론으로 백성들을 충동시켰습니다. 결국 그들은 가나안 땅의 주인공들이 될 수 없었습니다.
- 두 사람의 믿음의 결과와 축복은 여호수아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 갈렙이 속한 유대지파는 예루살렘 지역을 차지했고, 여호수아가 속한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 중부지역을 차지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장수하였고, 사는 날 동안 백성들의 영적 지도자로 살았습니다.
- 믿음으로 받은 축복입니다.
- 우리는 매사를 믿음으로 받아드리고 실천해야 합니다.
- 첫째, 예배를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 둘째, 기도를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 셋째, 찬송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 넷째, 헌금을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 다섯째, 교회를 섬기는 모든 행위를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 (예화)장로교 통합측 류영모 목사님이라고 계십니다.
- 일산의 한 소망교회 담임이시면서 통합측 총회장입니다.
- 이분은 설교도 잘하시고 교회도 대형교회입니다.
- 그분의 설교를 듣다가 제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 전도사님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 아침에 신학교에 등교를 하려고 나가는데 집 앞에 한 거지 아저씨가 와서 밥을 달라고 했습니다.
- 사실 집에 먹던 밥도 없었고, 학교 등교시간에 쫓겨 차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거지 아저씨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가서 강의를 듣는데 강의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 그 거지 아저씨에게 밥을 주지 못한 것이 계속 거슬렸습니다.
- 그 거지 아저씨가 자신에게 찾아 온 예수님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강의에 집중 못하고 집으로 오면서 다짐 했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밥을 많이 지어 놓았다가 그분이 오시면 꼭 밥을 대접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다음날 진짜 거지 아저씨 몫까지 밥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기다렸습니다.
- 그런데 거지 아저씨는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또 기다렸습니다.
-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거지 아저씨는 45년 동안 오지 않았습니다.
- 이 대목에서 류영모 목사님은 우시면서 그 때 그분에게 밥 한 번 주지 못한 아픔과 후회에 대해 울면서 설교하였습니다. 저는 울었습니다.
- 저는 고강동에서 목회 할 때 천원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 10년 넘게 우리 집을 찾아왔습니다.
- 그분은 오시면 1,000원만 주세요. 돈이 주머니에 없는 날은 다음날 꼭 오세요. 하고 쥐어 보냈습니다.
-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이 예수님이라면 1,000원만 주겠느냐는 마음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 그런데 그 후 다음에 오시면 10,000원을 드려야지 했는데 결국 10,000원을 못드렸습니다.
- 다른데는 10,000원씩 쓰면서 거지 아저씨한테는 10,000 원을 못 드렸습니다.
- 지금도 마음에 걸립니다.
- 다음에는 어떤 거지 아저씨가 내 앞에 나타나서 돈을 달라면 10,000원 이상을 주고 싶습니다.
- 그분이 나에게 거지의 모습으로 찾아 온 예수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사실 예수님은 내 곁에 나의 도움을 요청하는 예수님으로 오십니다.
- 나에게 돈이 필요해서, 밥이 필요해서, 위로가 필요해서, 치요가 필요해서, 돌봄이 필요해서 다가오십니다.
-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환경, 상황, 입장, 처지를 핑계대거나 합리화하면서 거절하거나 귀찮아합니다.
- 나도 힘든데 다른데 가보세요 합니다.
- 그런데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우리 주님은 거룩한 영광의 모습이 아니라, 병든자의 모습, 감옥이 갇힌 자의 모습, 배고픈 자의 모습, 목마른 자의 모습, 고통당하는 자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 그분은 우리에게 도움을 원하십니다.
- 그것은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서입니다.
- 성도여러분! 참 믿음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 예배, 기도, 봉사, 헌신, 전도, 선교, 헌금은 주님을 위한 것이라면, 섬김, 사랑, 구제, 선행은 내 이웃에게 베푸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행위가 곧 우리 주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 그런 사람들이 영원한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 참사랑의 성도들이시여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받고 실천하며 행위에 옮길 수 있기 바랍니다.
- 결론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긍정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 우리는 말씀을 삶속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 믿음입니다.
- 이런 사람들이 영원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우리 모두 갈렙과 여호수아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202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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