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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연기

신사/박인걸 2021. 12. 30. 09:45

저녁 연기(煙氣)

 

고즈넉한 시간이 오면

하얀 연기는 모락모락 오르고

밥 익는 냄새 마을에 퍼지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순해진다.

 

산 아래 납작 엎드린 마을은

앞 뒷산이 병풍처럼 둘러섰고

바람 한 점 없는 날이면

아늑한 어머니의 품이된다.

 

익명의 자유와 편리함에 중독된

대도시 안에 갇혀 사노라면

순수성이 탈색되어 괴리에 휘말리고

타고난 심성은 힘들어 신음한다.

 

고층 빌딩은 성처럼 일어섰고

바람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처럼 휘돌고

바퀴 달린 기계들은 굉음을 내뿜어

안온과 위안은 어디에도 없다.

 

아스팔트에서 뒹구는 저녁얼굴

가로등이 집어삼킨 땅거미

매연가스 자욱한 도시 길거리에서

저녁연기 오르는 마을이 그립다.

2021.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