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첫눈이 온다

신사/박인걸 2021. 11. 22. 23:15

첫눈이 온다.

 

황달 든 플라타너스 잎들은

어젯밤에 내린 찬비에 거의 쥐어 뜯겼다.

아침부터 낮은 구름을 몰고 온 바람은

사납게 도시 공간을 휘젓는다.

시답지 않게 내린 첫눈에 나는 실망한다.

그리웠던 사람을 떠오르게 못 해서다.

이런 날은 첫눈에 흥분했던 추억까지

아스팔트에 곤두박질치게 한다.

낙엽들은 자기들끼리 한곳으로 모인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청소차에 실려 어디로 갈지 모른다..

간판들이 여기 저기서 흔들리고

옷깃을 세운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이런 분위기가 뒷골목을 점령하면

내 기억은 남가좌동으로 나를 데려간다.

고학시절 빈 주머니로 걸을 때

찬 바람은 시린 양볼을 할퀴며 지나갔고

가로등 하나 둘 붉을 밝힐 때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한 없이 걸어야 했다.

그 시절의 기억은 잊어야 하지만

은밀한데 숨겨 놓은 신경통 같아서

겨울바람이 불어오면 아픈 가슴이 부어오른다.

한 줄기 빛처럼 뇌리를 스치는 기억 중에

왜 아픈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오를까.

마음속에 받아드리고 인출하는 내 정신 기능이

악에 물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다.

이천이십일년 십일월이십이일의 첫눈은

진짜 재미없는 영화같다.

202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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