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무두셀라증후군

신사/박인걸 2021. 11. 18. 20:50

무두셀라증후군

 

그는 내 곁을 떠나갔다.

황홀했던 추억을 보자기에 담아

은행잎 뚝뚝 떨어지는 길을 걸어

나의 기억 밖으로 사라졌다.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시작되며

행복은 움켜쥔다고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장단상교는 관계에서 비교될 뿐이니

나는 너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그토록 곱던 단풍잎이 일제히 스러지고

응달에 숨어있던 후박나무 잎들도

헐벗은 나뭇가지 앞에서 뒹군다.

나에 대한 너의 기억이 초라하지 않게

좋은 기억만을 천심(淺深)에 간직해다오.

그것이 나의 무드셀라 증후군일지라도

너에게 굽히지 아니하려는 품위이다.

늦가을 바람은 양 옆구리로 스며들고

쓸쓸함이 가을 논벌같아도

아무것도 숨기지 않은 당당함으로

스산한 겨울길을 걸어갈 것이다.

202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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