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낙엽을 밟으며

신사/박인걸 2021. 11. 20. 11:42

가랑잎을 밟으며

 

고운 단풍잎들이 절반은 낙하했다.

색깔은 비슷해도 생김새는 모두 다르다.

나무마다 살아 온 길이 다르고

이파리들 역시 제각각의 얼굴로 살았다.

발길에 차일 때 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슬픈 비명으로 내 귀에 거슬린다.

숲속이 아닌 아스팔트에 뒹굴며

구름처럼 떠돌아야 하는 고통인가보다.

내 앞에 걸어간 사람과 뒤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가랑잎을 밟을 때
고고하게 살아왔던 잎들은

밟히는 자괴감에 절망하고 있다.

빗자루를 든 청소부가 낙엽을 쓸어모은다.

히틀러의 군대에 쓰러진 유대인들처럼

어느 소각장으로 실려 가려나.

그러고 보면 운명이라는 것은

가지 끝에 매달려 살다 떨어지는 낙엽이 아닐까.

한꺼번에 지는 낙엽들이

저 넓은 산야(山野)에 얼마나 많을까.

시차를 두고 사라지는 인간의 죽음 같은 그것이 아닐까.

겹겹이 쌓인 낙엽이 부엽토가 되는데

해마다 어쩌자고 나무는 잎을 생산하는 걸까.

아무렇게나 길가에 내팽개치면서

왜 이파리마다 고운 입을 입혔을까.

가을바람이 4차선 도로를 달릴 때마다

자리를 잡지 못한 낙엽들은 자동차를 쫓아간다.

허무라는 활자들이 아무렇게나 뒹군다.

해마다 이런 풍경이 눈앞에 연출 될 때

나는 아무런 의미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올해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나도 한 잎 낙엽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잠깐 붉은 색으로 빛나다가

한적한 구릉지에 처박혀 조용히 사라지는 낙엽!

가을 바람이 몹시 스산하다.

202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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