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지나간 날들의 기억

신사/박인걸 2021. 9. 28. 20:24

지나간 날들의 기억

 

‘나는 자연인이다.’를 시청하는 이유는

결코 자연을 동경해서가 아니다.

자연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어서도 아니다.

어릴 적 자연을 밟으며 살아온

잊혀 지지 않는 기억들 때문이다.

산 속에 둘린 작은 마을에는

절망이 송곳처럼 곤두섰고

밭고랑에 출렁이는 자주 감자 꽃에는

애처로운 아이들의 아픔이 고여 있었다.

바람에 파도치는 강냉이 밭에는

꿈을 잃은 소년들의 절규가 메아리쳤고

소고삐를 잡고 풀밭을 헤매던 소녀는

다음날도 학교를 가지 못했다.

온종일 호미질을 해도

가난의 굴레를 좀처럼 벗어날 수 없어

찢어진 베적삼에 속살을 드러내야 했던

어머니의 삶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찬 서리 내린 오솔길을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비틀거리던

비쩍 마른 아버지 숨소리가

아직도 내 가슴 한 편을 도려낸다.

고달프기만 했던 그 시절

고운 무지개가 샘물에 뿌리를 박아도

달려가 붙잡고 싶은 의지도 접었다.

어둔 하늘에 밝은 별이 빛나면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향해 간절히 빌던

소년의 기도 항목(項目)들이

신기하게 이뤄진 지금 그날들의 기억은

나를 나 되게 한 자양분들이었음을 깨닫는다.

2021.9.28

'나의 창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그루 나무  (0) 2021.10.08
10월 한 낮  (0) 2021.10.04
가을 애수(哀愁)  (0) 2021.09.25
시간의 성화(聖化)  (0) 2021.09.23
또 한 번의 가을  (0) 2021.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