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어느 여름 날

신사/박인걸 2021. 8. 11. 17:04

어느 여름 날

 

매미소리 청청한 오후

풋풋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아무 근심도 없이 풀밭을 휘저으며

고운 소녀와 함께 마냥 즐거웠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는

총상 입은 나무들이 싸매지 못해 아파하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박격포탄에도

우리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아직 못다 자란 소년의 눈에는

여름 햇살에 피어나는 산나리 꽃과

손잡은 소녀는 한 쌍이었다.

인생의 사계절을 읽지 못한 나는

시간의 속도를 읽지 못했다.

삶의 유한성을 인식하였을 때는

세상이 아름답던 눈에 안개가 끼었다.

그 시절 여름과 지금의 여름에

작열하는 햇살과 푸른 숲은 같지만

내 머리카락에 내려앉은 늦가을에

땀이 흐르는 무더위에도 마음은 서늘하다.

202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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