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그 때

신사/박인걸 2021. 8. 7. 22:32

그 때

 

인생을 살만큼 살아온 시점에서

살아 온 발자취가 필름처럼 영사(映寫)된다.

총알이 빗발치는 어느 산기슭에서

대포소리를 들으며 어머니는 나를 낳았단다.

가난이 형평(衡平)이던 시절

차라리 서로가 가여워서 좋았다.

널려 있는 탄피(彈皮)를 모아 엿을 바꿔먹고

거미줄처럼 얽힌 전선(電線)을 벗겨 동전을 모았다.

찔레 순 꺾어 요기를 할 때면

배부른 산새 떼가 오히려 부러웠다.

자주 감자 꽃이 비탈 밭에 출렁이었지만

허기진 창자에 밀어 넣을 밀 껍질도 없었다.

체념과 포기가 일상이 돼버린

꿈과 희망은 서녘하늘에 걸린 노을이었다.

초점 잃은 눈동자들이 코를 흘리며

허기진 배에 맹물을 채울 때면

흐린 눈으로 바라보던 제 어미는

찢어진 베적삼 자락으로 눈물을 닦았다.

아주 두렵던 생(生)의 경계에서

상당한 세월을 극심한 혼돈 속에 흘려보냈다.

보릿고개 사라진 지금

그 때를 생각하면 깊은 꿈을 꾸는 듯하지만

나의 그 때는 삶의 짐이 참 무거웠다.

202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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