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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언덕에서
아주 오랜 옛날이야기를 듣는 마음으로
나 오늘 봄 언덕을 거닌다.
앙증맞은 들꽃이 봄바람에 출렁이고
어머니 마음 닮은 설유화 눈부시며
어느 소녀의 양볼 닮은 복숭아 꽃
눈부신 정오의 햇살에 반짝인다.
봄바람은 꽃향기 가슴에 담고
풀잎 피는 산등성을 넘어 달아나고
하나도 거리낌 없는 나뭇잎들은
무늬벽지처럼 세상을 도배한다.
아주 오래전 아무도 없는 오지(奧地)에서
감당하기 힘들만큼 벅찼던 풍경을
우연히 넘던 봄 언덕에 마주했을 때
감추어 놓았던 세상을 발견한 감격이다.
제각각의 생명들은 벅차게 호흡하고
나름대로의 생김새는 조화롭게 뒤엉켰고
오로지 푸른빛으로 움직이는
삼림(森林)과 들판의 푸른 혁명은
어떤 신조를 따르는 종교의 축제 같다.
아직 지지 않은 벚꽃과
푸른 잎과 흰 꽃이 반반인 귀룽나무 꽃들과
벌써 눈부시게 피어는 철쭉까지
나는 오늘 나만의 궁궐에 갇힌다.
20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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