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춘몽(春夢)

신사/박인걸 2021. 3. 18.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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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몽(春夢)

 

내 젊음은 어디론가 흘러갔다.

그 시절의 기억은 어렴풋이 남아 있지만

잔혹한 세월은 그 그림자까지 지울 것이다.

나는 하늘의 별을 따서

처마에 거는 꿈을 꾸며 살았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애써 걸었고

그들이 쳐다보지 않는 하늘을 의식했다.

끝없는 줄사다리를 구름위에 걸쳐놓고

곡예사처럼 줄을 타고 올랐다.

미끄러질 때면 심장이 화덕이 되고

머리끝은 송곳처럼 일어섰지만

높은 곳을 향해 걸어가는 자부심에

영웅의 아들들처럼 뿌듯했다.

하지만 나는 일단 멈춤 푯말 앞에서

오늘에야 앞 뒤 사방을 둘러보았다.

눈물골짜기 더듬으며 걸을 때

짙은 안개가 길을 지웠고

잔도(棧道)를 돌아 황산을 넘을 때

청명석 너덜겅은 내게 고통이었다.

나의 발자국은 고비사막에 깊이 묻혔고

거친 숨소리는 나를 윽박질렀다.

내가 붙잡았던 약속들은

모래알처럼 사막 언덕으로 흘러내렸다.

갑자기 밀려온 짙은 구름이

내 머릿속 깊은 곳까지 연막을 칠 때

건져 줄 사람을 절실한 마음으로 불렀다.

싸늘한 바람만 스칠 뿐

아무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가까스로 눈을 떴을 때 날은 저물었다.

봄꿈이 아지랑이만큼 어지럽다.

202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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