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헛수고

신사/박인걸 2021. 1. 1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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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수고

 

거미가 얽었던 줄은 끊어지고

까치가 지은 집도 부셔졌다.

딱따구리가 뚫은 구멍에는 빗물만 고이고

티끌로 쌓아 올린 개미집은

운 좋은 두더지가 차지했다.

새끼를 품다 떠난 산새 둥지에는

허허한 바람만 드나들고

날짐승의 그림자조차 사라진 지금

허무의 절정이 가지 끝에서 흔들린다.

옛 산성 무너진 돌멩이에는

무딘 정 자국에 이끼가 끼고

석수장이의 땀방울에 얼룩진 성채는

이름 모를 산새들만 쉬어간다.

사람들이 일으켜 세운 마천루와

정묘한 기아학적 도시의 유리 집은

아침햇살에 뜨겁게 불붙지만

쇠도 녹이는 세월의 무게 앞에는

낡은 돌담처럼 허물어진다.

땀 흘려 얻은 학위증서는 종이 짝에 불과하고

명함에 새긴 화려한 이력도

기껏해야 휴지조각이다.

여기 와서 뒤 돌아 보니

지나간 세월이 헛수고였네

아등바등 살아 온 삶이 헛고생이었어.

20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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