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공포(恐怖)

신사/박인걸 2020. 3. 9.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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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恐怖)

 

태연한 척 지나가는 사내 모습을

영상의 주인공처럼 바라본다.

눈 내리는 들길에 홑적삼 입은 노인처럼

호졸근하고 궁상스런 그가

양 어깨에 힘을 주는 듯하지만

범과 맞선 하룻강아지였다.

깊이 스며드는 무증상의 비세포성 생물 앞에

훔치다 들킨 소년처럼 당황한다.

손에 든 가죽 방패는 이미 낡았고

스승이 손에 쥐어준 단검은 녹슬었다.

신병훈련소에서 익힌 총검술은

이미 폐기처분 된 구식이다.

머릿속에 겹겹이 쌓인 무수한 활자들도

개기 일식 흑암 사이로 빛나는 광환에

놀라서 어지러이 흩어져 숨는다.

이렇게까지는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어떤 재벌 이세보다 무서울 것 없었다.

허나 객쩍게 부리는 혈기였다.

나는 제발 문을 닫는다.

날이 어둡기도 전에 두려워 문을 잠근다.

여전히 심장은 두근거린다.

20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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