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법(假定法)
거리에는 빈차들만 달리고
우중충한 가로등도 졸고 서 있다.
아직도 나는 너를 기다리고
내신발자국이 보도블록을 뚫는다.
긴 세월 실망이 깊어지면
내 심장에 아픈 피가 고여 들고
혈관으로 흘러가는 한숨이
여울 물소리처럼 메아리친다.
소식조차 없는 너에 대한 미련에
나는 바람처럼 떠나버리고 싶었지만
모질지 못한 성격 탓에
허황한 꿈속에서 헤매는지 모른다.
설령 네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말뚝에 내 허리를 묶고
결전의 날 배수진을 친 병사처럼
별을 헤아리며 서 있겠다.
내가 한 말들이 가정법이라 하더라도
떠났던 철새들이 되돌아오듯
나는 네가 돌아온다고 믿는다.
그러한 까닭에 오늘도 이렇게 서 있다.
2021.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