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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봄날
봄이 내리던 어느 날
바위산에 비치던 석양은 사리지고
불던 바람도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고 나면
조용한 마을에는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오르고
보리 밥 익는 냄새가 흩어져
지친 농부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처마 밑에 집짓던 제비들도 날개를 접고
앞마당 귀퉁이 홍매화 붉게 웃고
밭둑 산수유 노랗게 물들면
한 그루 목련은 꽃망울을 펼쳐서
봄밤의 달빛을 꽃송이에 채운다.
기차 없는 마을에는 경적소리 하나 없고
가끔씩 짓는 바둑이 소리와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가
조용한 시골 마을의 정적을 깬다.
봄기운은 아직 싸늘해도
물오른 가지마다 윤기가 돌고
봇도랑에 흐르는 맑은 물위에는
별빛이 실려 아랫마을로 떠내려간다.
전깃불이 없던 시골 마을의
그 봄밤은 막연하게 설렜었다.
올 해도 그해처럼 봄이 왔으나
내 마음은 그 해 봄날이 더 그립니다.
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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