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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태양이 붉은 하품을 하며 서산을 넘자
기다렸다는 듯이 어둠이 앞마당을 지운다.
하루가 통째로 없어진다 해도
여태껏 한 번도 울어본 기억이 없었다.
실직자의 하루는 갈 곳 없어 두렵고
샐러리맨의 하루는 톱니바퀴 안에 갇히고
어느 유치장에 갇힌 자의 하루는
쑥 즙을 마시는 고통이겠지만
노인의 하루는 곶감을 빼먹는 기분이다.
장편 영화 같은 인생이
종영(終映)이 가까운 시간이 다가오면
개찰구 없는 공간의 벽 앞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불안에 맞닥뜨린다.
원점을 찍은 내 궤적의 그래프는
하향곡선만 그리고 있고
핏기 잃은 살갗에는 검버섯만 늘어간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사라지면
나의 종착점이 긴 강처럼 누워있을 것이다.
나이가 드니 생각도 늙는다.
20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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