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하루

신사/박인걸 2021. 3. 4.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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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또 하루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태양이 붉은 하품을 하며 서산을 넘자

기다렸다는 듯이 어둠이 앞마당을 지운다.

하루가 통째로 없어진다 해도

여태껏 한 번도 울어본 기억이 없었다.

실직자의 하루는 갈 곳 없어 두렵고

샐러리맨의 하루는 톱니바퀴 안에 갇히고

어느 유치장에 갇힌 자의 하루는

쑥 즙을 마시는 고통이겠지만

노인의 하루는 곶감을 빼먹는 기분이다.

장편 영화 같은 인생이

종영(終映)이 가까운 시간이 다가오면

개찰구 없는 공간의 벽 앞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불안에 맞닥뜨린다.

원점을 찍은 내 궤적의 그래프는

하향곡선만 그리고 있고

핏기 잃은 살갗에는 검버섯만 늘어간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사라지면

나의 종착점이 긴 강처럼 누워있을 것이다.

나이가 드니 생각도 늙는다.

20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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