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섣달그믐 즈음

신사/박인걸 2021. 2. 1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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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그믐 즈음

 

잿빛 하늘에 눈은 내리지 않고

어제 불던 바람은 어디선가 쉬고 있다.

낮게 오르내리던 수은주는

다행이 두꺼운 점퍼를 벗겨준다.

털어버리고 싶은 감정을 짊어지고

조각 공원길을 걸어 정상에 서서

미세먼지 자욱한 도시를 바라보며

한 해의 아픔을 겨울 숲속에 던졌다.

포수에게 쫒기는 멧돼지처럼

코로나에 시달리며 산 한 해는 두려웠다.

눈만 뜨면 확진 자 검색에 촉각이 곤두서고

마스크는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

마주 오는 사람마다 경계의 눈빛으로

무장공비 대하듯 겁이 났다.

이제는 지루함에서 벗어나고 싶다.

너저분한 가면도 훌훌 벗어 버리고

생 얼굴로 도시 공기를 들이 마시며

한 해를 데려가는 시간의 소용돌이에

더러운 악몽을 몽땅 집어 던지련다.

섣달그믐과 함께 지저분한 게임을 끝내고

정월 초하루에는 새롭게 일어나련다.

개나리 가지 끝에 꽃눈이 웃고

벚꽃나무에 물이 오를 채비를 한다.

잔혹한 시간이 공포를 자아내도

자연은 물 흐르듯 순평하다.

섣달그믐 즈음 내가 나를 장악한다.

20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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