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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람
아파트 지붕을 밟고 달려 온 바람이
방금 마을 뒷산 팔각정에 몸을 부딪치더니
어느새 낡은 비닐종이를 높이 띄우고
목적도 없이 하늘 위로 솟구치고 있다.
종잡을 수 없는 바람의 난폭함에
나는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겨울이면 바람은 더욱 포악하여
브레이크 풀린 자동차보다 더 두렵다
어느 해 고목의 허리를 부러트리고
아파트 외벽을 허물며
미친 짐승처럼 허공을 돌아치면서
하나님의 집 십자가 첨탑을 무너트렸다.
나는 바람도 가는 길이 있고
강약 조절의 철학이 있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내 생각이 빗나갔다.
바람은 목적도 방향도 없이 돌아친다.
제멋대로 발광하는 미치광이이며
아무에게나 훼방 놓는 아주 사나운 깡패다.
바람이 달려오는 날이면
그냥 숨거나 멀리 피해야 한다.
오늘은 얼음장 같은 냉기(冷氣)를
걸어가고 있는 내 얼굴에 뿌리고 있다.
나는 바람을 끌어안을 수 없다.
바람은 언제나 나를 밀어내기 때문이다.
20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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