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디딜방아소리

신사/박인걸 2021. 2. 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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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딜방아소리

 

시간은 섣달그믐을 향해 달리고

계절은 입춘의 문지방을 밟고 섰지만

지난 밤 쏟아진 함박눈은

겨울을 틀어쥐고 완강하게 버틴다.

전두엽 어딘가에 처박힌 옛 기억을

정리 안 된 창고처럼 샅샅이 뒤진 끝에

한쪽 구석에 잠자고 있는 설밑 풍경을

간신히 기억의 손으로 집어 올렸다.

하늘은 산과 산이 떠받치고

앞강은 수많은 전설을 노래하며 흘러가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초가집들이

저녁연기를 일제히 질서 없이 내뿜을 때면

사나운 바람도 마을에 도착하는 순간

어린 양보다 더 순해졌다.

한겨울 추위가 제아무리 사나워도

순순한 마을 인심 앞에 봄눈처럼 주저앉고

줄기차게 쏟아지던 함박눈도

양지마을 입구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거기와 여기의 시간차는 균시차이지만

내 의식 속에 갇힌 시간은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시계추이다.

오늘은 그 시간의 언저리에서

떡쌀 빻던 어머니의 디딜방아소리가 들린다.

20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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