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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歲暮)
세모를 맞아도 거리는 붐비지 않는다.
코로나가 창궐한 도시는 비둘기들도 도망쳤다.
마스크 사이로 내비치는 경계의 눈빛들이
전선 병사의 눈초리보다 더 매섭다.
연일 튀어 나오는 확진 자 숫자와
앰뷸런스의 다급한 사이렌이 고막을 가를 때면
저승사자에게 쫓기는 심정이다.
달력의 마지막 숫자가 지워지던 날에는
한 해를 조용히 갈무리하며
다가오는 시간들을 설계도면에 그려 넣고
두 손을 모으고 예배당에 앉아
세 가지 소원을 적어 간절히 기도했었다.
보신각 종소리가 광화문 벌판에 퍼질 때면
Auld lang syne을 힘주어 부르며
지인과 어깨동무를 한 채
불빛 찬란한 도시를 휘젓던 시절도 있었다.
생애 처음 당하는 팬데믹 공포에
표범에 쫓기는 가젤이 되어
새해의 경계선을 두 발로 밟으면서도
헝클어진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없다.
2020년의 세모는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
2020.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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