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겨울의 고독

신사/박인걸 2020. 12. 30.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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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고독

 

차가운 겨울 길을 나 홀로 걸으며

그 무엇을 그리워할 뿐 붙잡지 못하고

이유 없이 얼어붙은 땅만 짓밟으며

흐르는 시간을 차가운 골수에 가둔다.

아직 나는 홀로 유폐되지 않았다.

우울증에 걸린 불안장애자도 아니다.

내 흉저 깊은 곳에 고인 애수가

가끔씩 폐와 심장사이를 휘저을 뿐이다.

살갗을 도려내는 동짓달 추위가

늙은 혈관을 급속히 수축시킨다 해도

아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앙상한 느티나무가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검불이 된 우슬초는 쓸쓸해도

길가 된서리 맞은 푸른 빛깔의 맥문동이

실오라기 같은 겨울 햇살을 움켜잡고

안간힘을 쓰는 힘겨움에서

불꽃같은 생명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겨울 고독은 아토피천식처럼 덤볐지만

이제는 하나도 두렵지 않다.

한 솥 밥을 먹으며 어깨를 맞댔던 사람이

밥그릇에 굵은 모래를 던질 때도

나는 쇠 젓가락으로 돌 부스러기를 집어냈다.

내 몸 어딘가에 형성 된 항체가

겨울 고독을 썰물처럼 밀어내고 있다.

올 해 겨울은 길이가 참 길다.

202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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