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계절의 기도
주여, 나도 영글고 싶습니다.
붉게 익은 수수가 고개를 숙인 것은
한 여름 뙤약볕을 온 몸에 칭칭 감고
된 바람에도 넘어지지 않아섭니다.
주여, 나도 진실하고 싶습니다.
산자락 새빨갛게 물든 오손 단풍잎은
살아 온 이야기를 하나도 숨김없이
사실대로 털어놓기 때문입니다.
주여, 나도 가난해지고 싶습니다.
산 까치 몇 마리 마른 정강이 드러내고
산열매 쪼아대는 눈빛에서
허리 굵은 내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주여, 나도 곱게 늙고 싶습니다.
샛노란 은행잎이 허공을 맴돌아
바람에 나풀대며 미련 없이 떠날 때
지나치지 않게 늙는 방법을 보았습니다.
주여, 내가 가진 것 다 주고 싶습니다.
마지막 한 톨까지 쏟아낸 후
빈 가지를 흔드는 밤나무에서
나누어 줌의 행복을 보았습니다.
훌훌 옷을 벗어 버리고
찬 겨울로 걸어 들어갈 나목들의
저 늠름한 용기에 감탄하며
어떤 충동에도 천연스럽게 하소서.
2020.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