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대추

신사/박인걸 2020. 10. 4.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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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자주 빛 대추가 올망졸망하다.

가로등 불빛에 대추나무 그림자 흔들릴 때도

가지 끝에 맺힌 열매는 말없이 익어갔다.

지난여름 강풍이 가지를 세게 흔들 때

알맹이들은 아우성치면서도 흩어지지 않았다.

여름 햇살이 웃통을 벗고 덤벼들 때도

대추는 이마로 들이 받으며 싸웠다.

피투성이 된 정수리 마다

붉은 누룽지처럼 딱지가 앉았고

밤이슬 하얗게 내려앉을 때

적(赤)진주 목걸이마냥 치렁치렁 엮었다.

잔칫상에 올랐던 쭈글쭈글 구겨진 대추는

벼락 칠 때 몸을 비틀면서 견디어 낸

불굴의 어떤 넋인 걸 알았다.

한 입 베어 물면 꿀맛 같은 그 향기는

평생의 노력이 담긴 한 권의 책을 읽는 맛이다.

오늘따라 가을 햇살에 대추가 빛난다.

202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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