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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자주 빛 대추가 올망졸망하다.
가로등 불빛에 대추나무 그림자 흔들릴 때도
가지 끝에 맺힌 열매는 말없이 익어갔다.
지난여름 강풍이 가지를 세게 흔들 때
알맹이들은 아우성치면서도 흩어지지 않았다.
여름 햇살이 웃통을 벗고 덤벼들 때도
대추는 이마로 들이 받으며 싸웠다.
피투성이 된 정수리 마다
붉은 누룽지처럼 딱지가 앉았고
밤이슬 하얗게 내려앉을 때
적(赤)진주 목걸이마냥 치렁치렁 엮었다.
잔칫상에 올랐던 쭈글쭈글 구겨진 대추는
벼락 칠 때 몸을 비틀면서 견디어 낸
불굴의 어떤 넋인 걸 알았다.
한 입 베어 물면 꿀맛 같은 그 향기는
평생의 노력이 담긴 한 권의 책을 읽는 맛이다.
오늘따라 가을 햇살에 대추가 빛난다.
202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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