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비에 대한 단상

신사/박인걸 2018. 7. 1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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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대한 단상

 

비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작위로 내린다.

바람도 떨면서 스쳐가는

첨탑 위에 앉은 새에게도 내린다.

어저께 꽃잎을 떨구고

우울증에 사로잡힌

바다건너 온 풀잎을 무겁게 한다.

비는 누구도 조절할 수 없는

통제 불능의 광란아 처럼

허둥지둥 덤벙이지만

한 방울도 함부로 낭비되지 않게

균일한 분배의 규범을 따라

속속들이 찾아 내린다.

오늘 같은 날은 어느 들판에 앉아

두발 근에 내리는 비에

아무 말 없이 흠뻑 젖으면서

어머니 소천(召天)때처럼

마음껏 울어보고 싶다.

가슴 깊이 맺힌 분노보다 더 아픈

몇 겹 접어둔 상처를 건드리며

여름비는 영감 있게 내린다.

눈썹 위로 내리는 비는

내 눈물에 젖어 슬픔이 되고

가슴에 내린 비는 마음에 젖어

뿌연 안개 되어 흐른다.

오늘 내리는 비는 그치지 말고

사연 깊은 이들을 찾아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가 풀릴 때까지

더 세차게 내려주려무나.

2018.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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