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좁은 문

신사/박인걸 2018. 7. 1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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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첫 관문은 많이 힘들었다.

어머니의 자궁 문을 여는데 열 달 걸렸다.

그 문은 이제 통과해야 할 문들의 서곡에 불과했다.

다음 세계를 들어가는 문들은 닫혀있고

문 앞에 선 나는 항상 고독했다.

열리는 문은 없고 열어야 하는 문들이

거울 속에 거울처럼 비쳐졌다.

사랑할 수 없는 대상을 사랑했거나

도망가는 무지개를 쫒아가지 않았다.

그 무엇이라고 불리 울 그것을 찾아

나는 언제나 외톨이었다.

강 건너 길에는 사람들이 즐비하고

강 이편에는 인적이 뜸하다.

그 문을 열려고 겨루는 자는 없었고

내 발자국을 따라오는 자도 없었다.

지레 겁먹은 자들은 비겁했고

싸움을 걸지 않는 자들이 불쌍했다.

도중에 돌아간 그들이 심히 안타까웠다.

그 문은 아주 협착(狹窄)하다.

그래도 나는 통과할 것이다.

어두운 밤들을 밀어낼 것이다.

자욱한 안개를 걷어낼 것이다.

쏟아지는 비를 쫄딱 맞을 것이다.

최대한 몸을 낮출 것이다.

나의 마음을 빈 통처럼 비울 것이다.

좁은 문이 바늘귀라도

반드시 그 문으로 들어갈 것이다.

커다란 낙타가 지나가고 있다.

2018.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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