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산그늘

신사/박인걸 2015. 8. 13. 06:46

 

산그늘
 
앞산 그늘이 길게 드리우더니
뒷산 뫼 부리를 거의 점령했다.
꼴짐 진 소년은 바쁘고
논 뚝 위로 소들이 종종걸음이다.
초가을 굴뚝은 은빛 연기를 내뿜고
마당에는 모깃불이 매캐하다.
감자 익는 냄새가
동구 밖까지 퍼질 때면
된장 바른 호박잎쌈에 입이 터진다.
한 낮 오므렸던 박꽃이
지붕위에서 다시 노래를 부르고
왕 거미 뒤뜰 처마 밑에
촘촘한 그물을 치고 있다.
철부지 강아지들은 고추밭은 휘젓고
배부른 닭들은 마당가로 모여든다.
아직 저녁별이 뜨기 전
마을은 고요에 휩싸이고
아늑한 손길이 고단한 마음을 보듬는다.
어디서 오는 평온일까
누가 주는 아늑함일까
그것은 어머니 손 같은 산그늘이었다.
201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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