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뿐
내가 의식의 눈을 떴을 때
당신은 내 안에 서 있었죠.
무념 상태였든 인식 상태였든
나는 당신을 방어할 수 없었죠.
나의 주체적 행위가
당신의 자주적 독립성을 능가할
역량에 미치지 못했거든요.
당신의 일방적 침입 앞에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지요.
나는 당신의 존재를 알고 있죠.
당신이 원하는 자를 점령하여
포로로 결박한 후에
기능에 적합한 용도로 부려먹지만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하지만 한 없이 망설였죠.
도망칠까도 생각했죠.
그러나 불가항력이란 사실 앞에
순순히 따르기로 결심했죠.
지금 와서 생각하면 고마움뿐
자의적 선택보다 탁월한 삶이었기에
또 한 번의 생애가 펼쳐진다면
더 적극적으로 따르리이다.
2017.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