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무정한 고향

신사/박인걸 2017. 6. 17. 14:14

무정한 고향

 

쉬땅나무 꽃이 솜처럼 포근한

개울가 길을 따라 걷노라면

빛바랜 영화화면 같은 추억이

쉴 새 없이 머릿속에서 어른거린다.

봇도랑 머리에 줄지어 서서

노란 그리움을 토해내던 달맞이꽃과

수줍은 소녀의 웃음 같은

자주 빛 야생화가 그토록 반가워하던 길

싱겁게 자란 옥수수 잎 위로

서걱 이며 여름 빗방울이 구를 때면

보랏빛 콩 꽃이 산뜻하게 웃으며

촌스런 시골 소년을 반겨주었던

마침 내린 굵은 소낙비가

앞산 허리에 긴 안개 띠를 두르면

거대한 수묵화 한 점이

전설 속에서 걸어 나오던 마을아

뒷동산 푸른 잔디밭에서

형 아우사이로 어울리던 동네 아이들

긴긴 세월 소식마저 알길 없으나

가슴속에 숨어있는 정든 이름들이여

잔뼈가 굵은 내 고향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뒤뜰에 서있던 산사나무만

옛 주인을 그리워하며 비스듬히 서있다.

모처럼 찾아 온 고향 뒤뜰이

아는 이 하나 없어 마냥 서운해

쓸쓸히 뒤돌아서는 노신사의

흰 눈썹 아래로 이슬이 맺힌다.

2017.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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