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한 고향
쉬땅나무 꽃이 솜처럼 포근한
개울가 길을 따라 걷노라면
빛바랜 영화화면 같은 추억이
쉴 새 없이 머릿속에서 어른거린다.
봇도랑 머리에 줄지어 서서
노란 그리움을 토해내던 달맞이꽃과
수줍은 소녀의 웃음 같은
자주 빛 야생화가 그토록 반가워하던 길
싱겁게 자란 옥수수 잎 위로
서걱 이며 여름 빗방울이 구를 때면
보랏빛 콩 꽃이 산뜻하게 웃으며
촌스런 시골 소년을 반겨주었던
마침 내린 굵은 소낙비가
앞산 허리에 긴 안개 띠를 두르면
거대한 수묵화 한 점이
전설 속에서 걸어 나오던 마을아
뒷동산 푸른 잔디밭에서
형 아우사이로 어울리던 동네 아이들
긴긴 세월 소식마저 알길 없으나
가슴속에 숨어있는 정든 이름들이여
잔뼈가 굵은 내 고향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뒤뜰에 서있던 산사나무만
옛 주인을 그리워하며 비스듬히 서있다.
모처럼 찾아 온 고향 뒤뜰이
아는 이 하나 없어 마냥 서운해
쓸쓸히 뒤돌아서는 노신사의
흰 눈썹 아래로 이슬이 맺힌다.
2017.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