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 소묘
정수리에서 맴돌던 태양이
건넌
마을위로 비켜가고
수척해진 능소화가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태풍에 휘둘린 잡초는
세탁해 낸 빨래 같고
벌레에게 뜯긴 나뭇잎 마다
호흡곤란을 겪고 있다.
짙푸르던 미루나무는
담즙이 막혔나 황달을 앓고
꼿꼿하던
억세 풀도
제풀에 주저앉는다.
뭉게구름이 걸레질을 해서일까
하늘은 만년설 호수가 되고
쓰르라미 사라진 숲은
거룩한 고요가 흐른다.
텃밭 고추는 바람이 주물러 익히고
해바라기에 감긴 줄 콩을
가을 햇살이 어루만진다.
시멘트 화단의 사루비아가
가을 옷을 입고 맘껏 뽐내지만
내일 내릴 새벽이슬에
오들오들 떨까 걱정이다.
2015.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