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기도(祈禱)의 힘

신사/박인걸 2020. 10. 23.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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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祈禱)의 힘

 

칡뿌리를 파서 방망이질을 하던

옆집 아이는 황달이 들어 쓰러졌고

교실 앞자리에 앉아 셈본을 하던 여자 아이는

폐병에 걸려 피를 토했다.

태양은 매일 대산(大山)차고 떠오르지만

배고픈 하루는 길기만 했다.

강냉이 죽 배급을 받은 아이들은

흘러내린 코를 죽에 섞어 삼켰고

책보에 둘둘 말은 도시락 김칫국물은

등골을 타고 내려 엉덩이 사이가 짓물렀다.

어느 날 찔레를 꺾어 주린 배를 채우던 나는

강기슭에 앉아 목 놓아 울었다.

뚫어진 양말마저 꿰맬 천이 없어

검정 고무신 한 켤레에 맨발을 담그고

칼바람이 부는 언덕길을 걷느라

시오리 학교 길에 발이 얼었다.

웃음을 잃은 아이들은 감정도 메말랐고

서로 눈이 마주쳐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

가난이 무겁게 짓누른 동심(童心)마다

꿈과 희망마저 멀리 도망쳤고

진달래꽃이 앞산을 붉게 물들여도

가슴에는 황사(黃砂)바람만 세차게 불었다.

별빛을 곱게 엮어 꿈을 매달고

달빛을 받아 위인 집을 읽어야 할 나이에

굵은 소고삐를 손에 잡고

누런 암소를 풀밭으로 몰고 다녔다.

칠흑 같은 어둠이 앞길을 가로막을 때

한 가닥 희망은 기도뿐이었다.

책갈피에 적은 깨알 같은 소원을

주문처럼 외던 기도가 하늘에 닿았다.

아직도 나는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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