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간다. 그 지루했던 계절은 가을 뒤로 숨고은행잎 빛바래는 언덕에는북방을 유랑하던 바람이 찾아든다. 햇볕은 지는 꽃잎처럼 흩어지고버즘나무 그림자가 건너편 인도를 덮을 때작열하던 여름 기세는 바지랑대처럼 기울어이제는 노출된 어깨가 시리다.청청하던 풀잎을 대할 때한없이 부끄럽던 늙은 피부가이제는 긴 팔 소매가 가려주니한치의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다.떠들썩했던 풀벌레 소리 사라지고흙길을 밟는 발자국엔 나뭇잎이 내려앉는다.산골짜기 타고 흐르던 냇물 소리도조용히 사라진 그 자리에반가운 가을은 작년처럼 자리를 잡는다.잊고 지내던 한숨들이서늘한 바람에 실려 날아가 버리고하늘은 짙푸르게 맑아져이제는 내 마음도 가벼워진다.양어깨를 짓누르던 짐을 내려놓고가을 그늘에 숨을 고른다.그 지루했던 여름은 갔지만계절의 흔적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