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으며 아스팔트에 물길이 났다. 길가 꽃들은 비를 쫄딱 맞아 초라하고 날개 젖은 비둘기 가련하다. 플라타너스 잎은 더러 뒹굴고 도시 매미도 빗줄기에 입을 닫았다. 우산을 받쳐 든 사람들 젖은 바지를 끌며 어디론가 걷는다. 늘 그랬듯이 비는 누구도 봐주지 않는다. 장맛비가 며칠간 내릴 때면 을씨년스러운 나만의 감정에 도망치고 싶다. 불어난 냇물을 건너던 아이가 아랫마을 봇(洑)둑에 엎어져 있었다. 따지고 보면 해묵은 일인데 왜 나는 아직도 그때의 아픈 기억을 비 오는 날이면 소환할까? 그 아이 엄마 눈에서 핏물 같은 눈물이 장맛비처럼 쏟아질 때 그 곁에 있던 나도 따라 울었다. 무작위로 내리는 비는 애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 빗줄기가 굵어질 때면 내 가슴은 아슬아슬한 벼랑위를 걷는다. 천둥과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