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머리카락

신사/박인걸 2024. 8. 23. 03:32
  • 머리카락
  •  
  • 고희를 넘은 나이에 이른 이마 위
  • 세월이 긋고 간 주름살 사이로
  • 나뭇잎처럼 떨어지는 은빛 머리카락
  • 나를 키운 시간의 흔적이다.
  • 내 몸의 샘과 숲은 기근이 들고
  •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 사라지는 머리숱을 어루만지며
  • 늙는 일이 두렵게 다가온다.
  • 거울 앞에 선 늙은 사람
  • 빗질하지 않아도 빠지는 머리카락
  • 남아 있는 건 머리카락이 아닌 엷은 털
  • 허공에 스치는 지난날 그림자 가엽다.
  • 한때는 든든했던 모공마저
  • 이제는 발치(拔齒)처럼 흔들린다.
  •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위력 앞에
  • 삶이란 그렇게 스러지는 것이다.
  • 하지만 얼굴에 새겨진 주름엔
  • 문신보다 더 아름다운 삶의 무늬가 있다.
  • 비록 검은 숲이 사라진대도
  • 그 속에는 한평생의 이야기가 잠들어 있다.
  • 202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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