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설교

어떤 가족 이야기(눅15:25-32)

신사/박인걸 2023. 9. 14. 19:19
  • 어떤 가족 이야기(눅15: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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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troduction』
  • 어떤 목사님이 개척교회를 하는데 재정이 어렵다 보니 성도가 드리는 헌금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 어느 주일에 감사헌금 봉투에 백만 원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 목사님은 마음이 설렜습니다.
  • 100만 원이면 이번 한 달은 교회 살림에 큰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하면서 봉투를 열어보았습니다.
  • 그런데 백만 원은 없고 10,000원만 들어 있었습니다.
  • 알고 봤더니 헌금 바친 사람의 이름이 백만 원이었습니다.
  • 간단한 유머로 오늘의 설교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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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nge sentence』
  • 저는 오늘 탕자의 비유 내용을 가지고 그동안 늘 들어왔던 탕자(蕩子)의 비유와는 사뭇 다른 각도에서 『어떤 가족 이야기』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겠습니다.
  • 우선 탕자의 비유에 등장하는 맏아들을 생각해 봅니다.
  • 이 집의 맏아들은 어떤 아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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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무정(無情)한 사람입니다.(눅15: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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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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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ext background』
  • 탕자의 비유 (Parable of the Prodigal Son) 이야기는 ‘두 형제’, ‘잃어버린 아들’, ‘사랑하는 아버지’, 혹은 ‘애타는 아버지’, 등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 이 비유는 복음서 중에 누가복음에만 수록되어있습니다.
  • 1-2절에 세리들과 바리새인들이 있는 장소에서 이 비유로 예수님은 설교하였습니다.
  • 맏아들은 바리새인을 빗댄 비유이고, 작은아들은 세리들을 빗댄 비유이며, 아버지는 하나님을 빗댄 비유인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 작은아들은 아버지 유산을 탕진하고 돌아왔고, 아버지는 그 아들을 과분하게 포용했으며, 맏아들은 동생과 아버지에 대해 큰 불만을 드러냅니다.
  • 이 유대인 가정의 이야기는 구속과 관련한 비유로서 잃어버린 양의 비유(눅15:4-7), 잃은 주화의 비유(눅15:8-10), 그리고 돌아온 탕자의 비유(눅15:11-32)입니다.
  • 맏아들은 율법 종교인 유대교 적 세계관을 가진 자로서 율법, 공덕, 보상, 정죄, 심판과 같은 극히 법률적 인간상을 반영합니다.
  • 작은아들은 타락, 음탕, 죄악, 불의, 죄인을 연상하게 하는 당시 세리와 창기와 같은 인간상을 반영합니다.
  • 아버지는 무한한 사랑, 긍휼, 동정, 자비, 무한한 은총을 가진 하나님을 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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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ble story』
  • 회개하고 돌아온 동생에 대해 형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 그는 합리적인 논리와 윤리적인 잣대가 분명했습니다.
  • 형은 돌아온 동생에 대해 유대인 사회의 율법적 기준으로 정죄했습니다.
  • 긍휼, 자비, 사랑, 동정 같은 것은 그에게 없었습니다.
  • 동생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습니다.
  • 어떻게 지냈느냐는 안부도 묻지 않았습니다.
  • 형이 생각하는 동생은 내쫓아야 할 대상입니다.
  • 벌을 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 집안에 얼씬도 해선 안 될 대상입니다.
  • 그런 자식을 포용하고 감싸주며, 융숭(隆崇)한 대접하는 아버지가 못마땅했습니다.
  • 새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주고, 새 신을 신겨주고, 송아지까지 잡아 잔치를 열어주는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잔치 자리에 가지 않았습니다.
  • 잔칫상을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 한적한 곳에 가서 분을 못 이겨 엉엉 울거나 벽이나 문짝에 자신의 머리를 들이받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 아니면 동생을 실컷 두들겨 패고 싶었을 것입니다.
  • 형이 생각한 동생은 가족을 저버린 배반자입니다.
  • 아버지의 설득을 거역한 불효자입니다.
  • 응분(應分)의 책임을 지고 벌을 받아야 할 인간입니다.
  • 그런 인간을 아버지가 아무 이유 없이 받아주는 행동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 그래서 아버지에게 대든 것입니다.
  • 법리적, 윤리적, 도덕적, 그리고 양심적 잣대로 잴 때 맏아들의 논리가 맞습니다.
  • 틀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 맏아들의 행동에 대해 동의(同意)하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  
  • 『Reader show』
  • 그러나 인간이 법으로만 사는 것은 아닙니다.
  • 윤리적인 잣대로만 잴 수 없습니다.
  • 사람은 실수할 수 있습니다.
  •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 돈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 가족 공동체를 배반할 수 있습니다.
  • 방탕하거나 타락할 수도 있습니다.
  •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 사람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존재입니다.
  • 잘못을 깨닫는 존재입니다.
  • 개과천선하는 존재입니다.
  • 자신의 실수와 허물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존재입니다.
  • 이 집의 작은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 그렇다면 큰아들의 그런 태도는 맞지 않습니다.
  • 동생을 맞아주었어야 했습니다.
  • 아버지를 이해하였어야 했습니다.
  • 맏아들은 그런 의미에서 무정한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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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rd expose story』
  • 우리 주님은 죄 용서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하라고 하였습니다.
  • 간음하다 잡힌 여인도 용서하였습니다.
  • 세금을 늑탈(勒奪)한 삭개오도 용서하였습니다.
  • 남편을 다섯 번이나 갈아치운 수가 성 여인도 용서하였습니다.
  • 십자가에서 자신을 못 박아 죽이는 악인들도 용서하였고, 강도질하다가 십자가형을 당하는 오른편 강도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였습니다.
  •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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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pplication』
  • 성도 여러분! 작은아들이 여러분의 동생이라면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 본문에 등장하는 맏아들과 같은 태도로 대하겠습니까?
  • 아버지와 같은 태도로 대하겠습니까?
  • 이 시간에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 복음적인 자세입니다. 우리 모두 맏아들과 같은 자리에 있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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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nge sentence』
  • 위에서 우리는 무정한 인간 맏아들을 보았습니다.
  • 그렇다면 이 집안의 작은 아들은 어떤 인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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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우매한 인간입니다(눅1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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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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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ble story』
  • 작은아들은 아버지 슬하에 사는 것이 싫었습니다.
  • 그는 분리독립을 요구했습니다.
  • 재산상속을 줄기차게 요구했습니다.
  • 인자한 아버지의 설득에도 막무가내였습니다.
  • 자식에게 이기는 부모는 없습니다.
  • 작은아들의 끈질긴 요구에 아버지는 법적 절차를 따라 재산을 상속했습니다.
  • 작은아들은 뛸 듯이 기뻤습니다.
  • 신바람이 났습니다.
  • 아버지의 간섭과 무정한 형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그는 상속재산을 현금화했습니다.
  • 큰 전대에 돈을 담아 아버지 집에서 멀리 도망쳤습니다.
  • 그러나 이 완전독립이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첫 단계였습니다.
  • 세상 물정 모르는 작은아들이 통제, 절제, 관리, 감독해줄 아버지를 떠나는 것은 극히 위험이 뒤따르는 일입니다.
  • 작은아들은 독립은 원했으나 삶의 방향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 결국, 그는 타락했고, 죽음의 수렁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 작은아들은 목적 없이 사는 인생의 모형입니다.
  • 그는 먼 나라로 갔습니다. 계획 없이 갔습니다.
  • 짊어지고 간 돈을 사업에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 계획 있게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익을 산출하지 않았습니다.
  • 성공에 대한 프랜(plan)이 없었습니다.
  • 비전이나 이상을 갖지 않았습니다.
  • 구체적인 삶의 목표가 없었습니다.
  • 그는 극히 우매(愚昧)한 인간이었습니다.
  • 그는 세상을 너무 얕잡아 보았습니다.
  • 뜬구름 잡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 돈의 가치를 모르는 자였습니다.
  • 자신의 수중에 있는 돈이 얼마나 귀한 돈인지 몰랐습니다.
  • 자기 아버지가 그 돈을 어떻게 모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 아버지가 피땀 흘려 모은 돈인 것을 몰랐습니다.
  • 그는 바보 같은 인간입니다.
  • 그는 세상을 너무 쉽게 보았습니다.
  •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 종합적인 판단력이 모자란 인간입니다.
  • 구체적인 계획 없이 사는 인간입니다.
  • 그는 흥청망청 돈을 뿌리며 다녔습니다.
  • 아름다운 여인들과 가무를 즐겼습니다.
  • 음탕한 세계에 빠졌습니다.
  • 헛된 일에 금전을 탕진했습니다.
  • 생산적인 인에 물질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 경제 관념이 전혀 없는 자였습니다.
  • 얼마 못 가서 그는 거지가 되었습니다.
  • 공간적으로는 아버지에게서 독립했는데 이제는 물질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 여러 곳을 전전하며 돈을 벌어보려 했지만, 돈이 쉽게 벌리지 않았습니다.
  • 그는 최악의 상황에 내몰렸습니다.
  • 도시에서 농촌으로 추락했고, 그는 돼지 치는 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 유대인 사회에서 가장 혐오(嫌惡)직업이 돼지 치는 일입니다.
  •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녹록지 않습니다.
  • 설상가상으로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 먹을 것이 없어 생존이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 돼지가 먹는 사료를 먹어야 했습니다.
  • 그는 눈앞에 캄캄했습니다.
  • 지금과 같은 상황이 전개된다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일생일대에 가장 큰 위기를 만났습니다.
  • 희망이 사라진 현실을 만난 것입니다.
  • 회복 불능의 상태에 처한 것입니다.
  • 자력으로 일어설 확률은 제로(zero)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 그의 이런 상태는 아버지 집을 떠날 때 이미 예견되었습니다.
  • 그래서 아버지가 만류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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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spel story』
  •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가 돌이켰습니다.“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눅15:17-19). 라고 하였습니다.
  • 뼈저린 반성을 했습니다.
  • 아버지에 대해 재평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 아버지께 지은 죄가 하나님께 지은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 지금까지의 자신의 판단과 결정이 우매하고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올바른 결정을 했습니다. 아버지께 돌아가서 용서를 구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 아들이 아니라 종의 신분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진실한 회개 자의 모습입니다.
  • 그리고 그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렸습니다.
  • 그에게는 새로운 삶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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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vangelical application』
  • 우리는 모두가 작은아들과 같이 우매한 인생들입니다.
  • 여기서 아버지는 하나님이고, 우리는 작은 아들에 해당합니다.
  • 아버지 집을 떠난 작은 아들과 같이 우리는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정서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던 자들입니다.
  • 아버지 집을 떠난 세상에는 쉴 곳이 없습니다.
  • 안정된 곳이 없습니다. 마음에 평안함이 없습니다.
  • 진정한 자유가 없습니다.
  • 그곳에는 불안과 초조와 염려와 근심, 걱정이 있는 곳입니다.
  • 죄의 노예, 마귀의 노예가 되어 결국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우리는 돌아가야 합니다.
  • 아버지 집으로 가야 합니다.
  • 우리 주님 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 우리 모두 주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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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nge sentence』
  • 우리는 앞에서 무정한 맏아들과 우매한 작은 아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그들의 아버지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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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자비한 사람입니다(눅15: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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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22-24).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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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spiration message』
  • 돌아온 작은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태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 작은아들은 엄청난 죄인입니다.
  • 정서적으로 아버지의 통제를 싫어한 자입니다.
  • 형과의 가족애를 저버린 자입니다.
  •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자입니다.
  • 인간의 신의를 저버린 자입니다.
  • 이런 자는 가족 공동체에서 내쫓아야 할 자입니다.
  • 아주 못된 자식이며, 형제입니다.
  • 그런데도 아버지는 따뜻하게 맞이했습니다.
  • 작은아들의 모든 죄를 용서했습니다.
  • 새 옷, 새 신발, 가락지, 송아지와 파티, 이것은 진정한 용서와 환대, 그리고 과거를 묻지 않는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입니다.
  • 예수님의 탕자(蕩子) 비유는 이 대목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 아마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자신의 자식이 탕자와 같았어도 용서하고 이 비유에 등장하는 아버지와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 아버지는 아들이 죽을죄를 지었어도 아들 편입니다.
  • 왜 아들 편입니까? 자기가 낳은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혈연관계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성격입니다.
  • 어떤 법리적인 척도나 논리적인 설명이 적용될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 탕자의 아버지가 속상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 작은아들이 저지른 일에 괘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크게 속이 상했을 것입니다.
  • 실컷 두들겨 패고 싶었을 것입니다.
  • 하지만 죽지 않고 돌아온 그것이 다행이며, 초라한 몰골로 돌아온 자식이 측은했던 것입니다.
  • 그것이 아버지 마음입니다.
  • 아버지를 반역한 압살롬이 죽었을 때 다윗은 아들의 죽음에 통곡하였습니다.
  • “내아들 압살롬, 내아들 압살롬아”(삼하18:33)라고 외치며 울었습니다.
  •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아들을 어떻게 꾸짖을 수 있습니까?
  • 아버지의 아들이 자신을 머슴이나 종으로 여겨 달라고 하는 자식을 어떻게 내쫓을 수 있습니까?
  •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입지못한 모습으로 돌아온 아들을 뭐라고 나무랄 수 있습니까?
  • 그래서 아버지는 부성애를 발휘하여 아들을 끌어안은 것입니다.
  • 객관적으로 볼 때 과분할 정도로 작은아들을 맞이했습니다.
  • 그 이유는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 자신은 아버지였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가 맏아들을 소외시키거나 작은아들을 더 편애한 것은 아닙니다.
  • 맏아들도 똑같이 사랑했습니다.
  • 여전히 아버지의 재산은 큰아들의 몫이며, 아버지 집에 함께 사는 것 자체가 맏아들을 사랑하고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 오히려 아버지 마음에는 집을 나간 작은아들보다 맏아들이 더 든든했고, 믿음직했던 것입니다.
  •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본 맏아들이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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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vangelical application』
  • 이 비유에서 아버지는 하나님이라고 서두에서 언급했습니다.
  • 두 아들은 대하는 아버지는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 마음입니다.
  • 본문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주는 아버지입니다.
  •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입니다.
  •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아버지입니다.
  • 자식을 끌어안는 아버지입니다.
  • 100번 1,000번이라도 용서하는 아버지입니다.
  •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식을 나쁘다고 욕해도 자식을 편드는 아버지입니다.
  • 아버지 품을 떠나도 끝까지 기다리는 아버지입니다.
  • 아버지한테 대들고 섭섭하다고 해도 그 아들을 미워하지 않는 아버지입니다.
  • 그 아버지가 우리 하나님입니다. 나의 하나님입니다.
  • 그 하나님이 맏아들과 작은아들을 품고 사랑한 탕자의 아버지입니다.
  • 그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입니다.
  • 이 집의 형제는 바람직한 관계가 아니지만, 두 아들을 품어내는 아버지가 있어서 중재할 수 있습니다.
  • 맏아들이 까칠한 사람이지만 아버지가 있어서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 작은아들이 문제의 사람이지만 아버지가 있어서 형제 사이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 인자한 아버지, 사랑의 아버지, 긍휼의 아버지가 있어서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 이 아버지가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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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inal conclusion』
  • 결론입니다. 맏아들은 무정합니다. 작은아들은 우매합니다.
  • 두 아들은 무정하고 우매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 이 집의 아버지는 자비합니다.
  •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심으로 우리는 좋은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언제까지나 하나님 아버지 안에 살아야 합니다.
  •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 우리 모두 하나님 안에서 평안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2023,9,24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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