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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주제별 예화모음)
- ▣ 사랑의 공동체
- 헤밍웨이는 한 이야기를 통해 파코라는 이름이 얼마나 흔한지를 보여 주었다. 어떤 아버지가 마드리드로 가서 신문에 광고를 냈다. 그 광고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파코야, 모든 것을 용서해 줄 테니 수요일 낮 12시에 모나나 호텔에서 만나자. 아버지가.” 다음 날 행정 당국은 민병대를 동원해 호텔 앞에 모인 800여명의 청년들을 해산시켜야 했다.
- 우리도 모든 것을 용서받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호텔 문 앞에 서 있는 존재다. 이런 우리에게 복음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다른 파코들도 모두 초대하셔서 그들을 기쁘게 맞으신다. 우리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은혜의 리듬에 맞춰 움직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누군가가 나의 왼손을, 또 다른 누군가가 나의 오른손을 부여잡는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하나의 거대한 원이 형성된다. 아버지의 사랑은 매우 사실적이고 강렬하다. 그것은 변화시키는 광선을 내뿜는 순수한 태초의 빛과 같다. 우리는 처음으로 자신을 진실하게 보게 될 뿐 아니라 서로를 진실하게 보게 된다.
- 거룩하신 하나님의 초청으로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하나님은 경외감이 상실된 곳에 예배를 명하시고, 침묵에 대한 인내가 상실된 곳에 말씀을 들려주시며, 개인주의가 팽배한 곳에 진실한 사랑을 베푸신다. 이제 우리는 예배와 말씀과 사랑의 삶을 시작해야 한다.
- 「내가 만든 하나님」/ 도널드 맥컬로우<생명의삶 2008.11>
- ▣ 멋진 공동체
- 어렸을 때 아주 멋진 공동체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공동체에 들어가 그곳의 일부가 된다. 공동체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육체적, 감정적, 정신적인 부분을 응원하고 지탱해 주기 때문이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만약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그들은 나의 짐을 함께 져줄 것이다.
- - 엘리너 와일리의《내 인생과 화해하는 법》중에서 -
- * 9년째 아침편지를 쓰면서, 그리고 아침편지가 '마음의 공동체'로 자라는 것을 지켜보면서, 서로를 응원하고 지탱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소중한 지 누구보다 실감하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과 만나 어울리고, 사랑하고, 짐을 나누고,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 가는 것! 갈수록 숨 막히는 우리네 인생살이에 그보다 더 좋은 청량제는 없습니다. 참 멋진 삶이기도 합니다.
- /고도원의 아침편지
- ▣ 갈비뼈 공동체
- 유대교의 율법 해설집인 ‘탈무드’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를 빼내 이브를 만드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아담의 머리뼈를 빼냈다면 이브가 아담의 머리 위에서 군림할지도 모른다. 가장 아래에 있는 발가락 뼈로 만들었다면 아담이 이브를 짓밟지 않을까. 그래서 몸의 가운데에 있는 갈비뼈를 빼내어 아담의 중심과 이브의 중심을 이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좀 더 추론해보건대 턱뼈였으면 아마도 말이 많아 싸울지도 모르고, 팔의 뼈였다면 삿대질하며 싸우기에 바빴을지도 모른다.
- 갈비뼈로 이어진 아담과 이브의 모습은 남녀간, 또는 부부간 평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평등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뼈 속에 불어넣어주신 생명의 입김이고, 생명의 원천은 사랑이다. 왜냐하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사랑(요일 4:8)’이시기 때문이다. 생명과 사랑의 합주가 진정한 인간 공동체의 핵심이다.
-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 ▣ 성숙한 공동체를 향하여
- 파리 시내에 세계박람회 기념으로 철구조물인 에펠탑을 건립할 때의 일이다. 파리의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모파상을 비롯한 많은 지성인이 그 일을 무척 반대했다. 그러나 탑이 완공된 후 모파상은 매일 에펠탑 카페에 올라가 차를 마시고 글을 썼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어서 누군가 그에게 "그렇게 이 탑의 건립을 반대하고 싫어하던 당신이 어떻게 이 탑을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모파상은 "이 탑에 들어와 앉아 있으면 이 탑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 역설적인 이야기다. 무슨 일을 하든지 비판과 반대가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비판을 위한 비판만 하는 사람이다. 충분한 토론과 숙고의 시간을 거쳐 일의 방향이 결정되어지면 남은 것은 비판 대신 협력을 통한 상생의 기쁨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럴 때 그 공동체는 성숙과 발전의 역사를 이루게 된다.
-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 ▣ 쉼과 회복의 공동체
- 2차대전 후 20세기 중반의 유럽은 완전히 정신적인 공백상태에 빠져있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유럽인들은 인간을 믿었다. 문예부흥과 휴머니즘의 영향으로 인간이 위대하고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유럽에서 2차대전이 일어났고 히틀러는 유대인을 600만명이나 죽였다. 그것도 가장 비참하고 끔찍하게. 나치 정권은 프랑스와 스위스에도 있었다. 그래서 같은 민족끼리 서로 모략과 암투를 벌여야 했다.
- 한 마디로 인간성이 완전히 황폐화되고 만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그들은 철저하게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아 인간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 바로 이때 F 셰퍼 목사가 스위스의 알프스 산록에 라브리공동체를 세웠다. 라브리(L’Abri)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은신처, 피난처’를 의미한다. 그가 라브리공동체를 세운 목적은 진정한 공동체 생활을 통해 파괴된 인간성을 되찾고 일그러진 신앙을 회복함으로써 유럽 정신사의 황폐한 골을 메워 시대의 정신적, 영적 지주 역할을 하기 위함이었다. 라브리 공동체에 학자 예술인 종교인 엔지니어 등 각계의 수많은 지성인이 모여 셰퍼 목사와 함께 쉼과 회복의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통해 진정한 치유와 회복과 자유의 은총을 입게 되었다. 또한 유럽 사회의 정신적, 영적 지주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인간에게 쉼과 회복이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참된 쉼을 통하여 진정한 치유와 회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매우 많은 사람들이 피서와 휴가를 즐기고 있다. 그러나 쉼이란 전인적이어야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쉼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모든 쉼들마저도 방황이고 피곤이며 괴로움의 연속일 수가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모두 알프스의 라브리로 갈 수는 없다. 우리 주변에 인생의 라브리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 라브리가 바로 교회이다. 사실 셰퍼 목사가 세운 라브리 공동체도 새로운 형태의 교회일 뿐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인생의 참쉼터요 피난처로 주셨다. 우리 주위에 있는 교회는 모두 참쉼과 회복의 공동체이다. 아무리 작은 개척교회라도 그 안에서 치유와 회복과 새 자유의 역사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다. 그런데 이런 교회를 곁에 두고도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면 얼마나 억울한 사람인가. 더구나 그 교회 안에 있으면서 여전히 몸된 교회를 비판하며 불평을 일삼고 있다면 얼마나 불쌍한 자이겠는가.
- /소강석 목사 (분당 새에덴교회)
- ▣ 우리 정신과 공동체 정신
- 한국 사람들은 ‘우리’라는 연대의식으로 맺어져 있다. 세계에서 많고 많은 민족들과 국가들 중에 한국 사람들만큼 ‘우리’라는 말을 많이 쓰는 민족은 드물 것이다.
- 서양의 경우에는 이름을 쓸 때에 이름이 먼저 나오고 성이 나중에 나온다. 개인이 집단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성이 먼저 나오고 이름이 뒤에 붙는다. 집단이 먼저 있은 후에 개인이 있음을 드러낸다. 또 자신을 소개할 때에도 외국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다음에 어느 회사, 어느 조직에 속하였음을 말하나 한국 사람들은 ‘어느 회사의 아무개’ ‘어느 교회의 아무 목사’하는 식으로 소속을 먼저 밝힌다.
- 이런 ‘우리 정신’이 바로 ‘공동체 정신’이어서 좋은 점이 많다. ‘우리’로 연결되어 있기에 서로 간에 정(情)이 있고 그 정은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나쁜 점 역시 있다. ‘우리’가 아닌 밖의 사람들에 대하여는 배타적이 되기 때문이다.
- 요즈음 우리 사회에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현상이 끼리끼리 패거리를 지어서 자기 패거리가 아닌 사람들에게 대하여는 배타적이 되고 있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식민지를 겪은 경험이 있는 사회가 지니는 공통점이라는 지적도 있다. 과거 청산이란 이런 점에서는 꼭 있어야 할 운동이라 여겨진다. 자기들만의 ‘우리’가 아니라 모두들을 위한 ‘우리’가 될 때 우리 앞날은 밝아질 것이다.
- ▣ 공동체 성공의 3요소
- 나는 1971년, 30세 되던 해로부터 지금까지 공동체운동을 펼쳐 왔다. 지난날들을 되돌아 보건대 의욕은 있었으나 경험과 분별력이 모자라 공동체운동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한 것에 대하여 상당한 부담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결과도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하고 그간의 경험을 살려 앞으로 제대로 한번 해 봤으면 하는 마음이 절실하다. 그런데 그간의 경험 속에서 체득한 바를 따라 말하자면 공동체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다음의 3가지 요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 첫째는 동질의 신앙, 혹은 이상이다. 공동체가 공동체답게 이루어지려면 그 공동체 구성의 기초가 되는 신앙이나 신념, 혹은 이상이 같아야 한다. 이런 동질성이 없다면 그 공동체는 한때는 흥성할지라도 어느 땐가는 와해하게 된다.
- 둘째는 합의된 목표이다. 어느 공동체나 나름대로의 목표가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 목표를 결정하는 과정이 개방적이요, 민주적이어야 한다. 바로 이런 열린 공동체가 공동체 성공의 두 번째 요체이다.
- 세 번째는 합리적 경영이다. 기업이나 정치나 심지어 교회나 가정까지도 다 그러하겠지만 공동체의 운영이 합리적이지 못할 때 그 후유증은 심각하다. 공동체 운영에 합리성을 상실하게 되면 한때는 효율적으로 되다가도 결국은 공동체성을 상실하고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케 되기 십상이다.
- ▣ 공동체의 구성요소
- 나는 겸손의 의미를 이해한다. 겸손은 자기 경시가 아니라 행동의 실제 원칙이다. 나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내게 닥친 불행을 운명 탓으로 돌린다면 나는 운명에 종속되는 것이다.
- 또 나의 불행을 배신 탓으로 돌린다면 나는 불행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잘못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인간으로서 나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는 인간 공동체의 필연적인 구성요소이다.
- - 생텍쥐페리/이민수 옮김 <나의 친구> 중에서 -
- 따뜻한 시선과 포근한 마음으로 추운 겨울을 이겨 나가시는 아침편지 가족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고도원의 아침편지
- ▣ 불의 공동체
- 엄동설한이 되면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이는 자리가 있다. 따뜻한 온돌방이다. 냉랭한 인간관계 속에서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 주변에는 늘 사람이 모인다. 교회도 뜨거워야 성도가 모인다. 기도가 뜨겁고, 말씀이 뜨겁고, 찬송이 뜨겁고, 성도 간의 사랑이 뜨거운 불의 공동체가 될 때 사람이 모인다.
- 우리 하나님은 불의 하나님이시며(히12:2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불을 붙이러 오셨으며(눅12:49), 성령님은 불길 같은 모습으로(행2:3) 임하셨다. 삼위일체 불의 하나님을 믿는 자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만난 엠마오 길의 제자들처럼 그 가슴이 뜨거워야 한다(눅24:32). 절대로 성령의 불을 끄지 말아야 하며(살전5:19), 기도로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왕상18:24)을 만나야 한다. 불세례(마3:11) 없이 교회성장은 없다.
- /서재일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 ▣ 함께 장벽을 부수는 공동체
- 우리는 함께 장벽을 부수고 함께 상처에 노출되며 함께 하나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독특성과 개인적인 은사들과 창조성이 말살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활발해지고 고양되는 연합을 향해 거듭나기 위해서 모든 이기적인 힘들은 죽어야 합니다. 공동체는 돌보는 것, 즉 사람들을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공동체를 사랑하는 사람은 공동체를 죽이고,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공동체를 세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을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신들의 상처와 은사를 가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공동체는 사람들을 배려해주고 그들이 자라도록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동체는 또한 우리도 자랄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동체는 서로에게 자유를 줍니다. 공동체는 서로에게 신뢰를 줍니다. 공동체는 강한 지지와 도전을 줍니다. 일단 우리가 공동체 안에 있으면 형제와 자매들이 우리에게 보내집니다. 우리를 화나게 하는 사람도 있고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공동체는 각 사람을 모두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심지어 우리에게 골칫거리인 그들을 환영하고 그들을 경청할 때 성장이 있을 것입니다.
- /희망의 공동체 / 장 바니에
- * 기도: 나를 홀로 두시지 않고 찾아오신 예수님, 그 사랑을 본받아 이웃을 돌보며 섬기게 하소서. 나의 개인의 필요에만 집착함으로 다른 이들을 힘겹게 하는 죄를 범하지 않고 격려하고 위로하며 돕는 자가 되게 하소서.
- * 묵상
- ● 나만의 이익 때문에 전체의 공동 이익에 무관심하지 않습니까?
- ● 나는 날마다 하나님의 충만한 영의 세계로 나아갑니까?
- /생명의 삶
- ▣ 은사의 사각지대가 없는 교회
-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살아 있는 찬양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거의 매주일 경험하는 일이지만 6부 예배쯤 되면 에너지가 많이 소진된다. 하지만 예배 시작 전에 30분쯤 찬양을 하면 다시 힘이 펄펄 난다. 역대상 25장을 보면 대규모의 찬양대가 나온다. 나팔 부는 자만 최소한 100명이 넘었으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오늘날 세계적인 교향악단 가운데 금관악기 연주자만 10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는 없다. 수백 명의 연주자가 악기를 연주하는 가운데 예배를 드린다면 얼마나 흥겹고 감동적이겠는가? 그 다음에는 172명의 성 문지기가 나온다. 이들도 오늘날 교회 관리나 안내 사역을 하는 사람들이다. 교회 냉난방, 환기, 주차 사역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왕의 수하에서 백성의 일을 다스리는 사람들도 나오는데, 이 사람들은 분쟁 조정자들이다. 공동체 안에 문제가 생기면 도와주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은 이 일을 대단히 기뻐하신다. 이처럼 사람마다 부름 받은 것이 다르지만 함께 모여서 일하도록 만들어 주셨다. 한 자료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은 평균 500~700가지의 다른 기술과 재능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 모든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기여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당신이 가진 어떤 은사가 너무 평범하더라고 걱정할 것이 없다. 이 말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뜻과 당신의 은사가 만나는 교차점보다 더 행복한 곳은 없다."
- -「능력의 실체를 경험하는 신 동행기」/ 오정현
- * 기도: 주님의 일꾼은 기도하고 말씀 전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세상사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깨끗한 심령으로 주님 앞에 날마다 나아가며 맡겨 주신 직분을 성실히 감당하게 하소서.
- /생명의 삶
- ▣ 공동체의 힘
- 미국 캘리포니아에 레드 우드라는 참나무가 있습니다. 이 참나무는 수령이 2,3천년쯤 되며, 높이가 100m를 넘고 둘레도 8-9m나 되는 큰 나무입니다. 이렇게 큰 나무가 어떻게 비 바람을 이겨 내는가를 연구하다가 나무 밑을 파 보고는 중요한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 덩치 큰 나무는 뿌리를 깊이 박고 다른 나무들과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 까닭에 어떤 기상 변화에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자기 혼자서는 유혹과 시련에 부딪힐 때 넘어질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하여 함께 살아갈 때 그리스도인은 모든 환난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 ▣ 공동체(共同體)
- 공동체(共同體) 또는 커뮤니티(community)는 같은 환경을 공유하는 사회 집단이며, 보통 같은 관심사를 가진다. 인간의 공동체에서는 믿음, 자원, 기호, 필요, 위험 등의 여러 요소들을 공유하며, 참여자의 동질성과 결속성에 영향을 주고 받는다.
- 서구의 공동체를 뜻하는 커뮤니티(community)는 라틴어로 같음을 뜻하는 communitas에서 왔으며, 이 말은 또한 communis, 즉 같이, 모두에게 공유되는 에서 나온 뜻이다. Communis라는 말은 라틴어 접두사 con- (함께)와 munis (서로 봉사한다는 뜻과 관계 있다)의 합성어이다. 공동체를 이루는 요소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 소속감: 학습공동체의 참여자들은 충성심을 느끼고, 그룹으로 뭉쳐서 계속 일하고 타인을 돕도록 한다.
- * 영향력: 참여자들은 공동체 안의 일들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
- * 요구충족: 학습공동체는 참여자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거나 도움을 청하거나 자세한 정보를 원함으로써 특정한 필요 요구를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사건의 공유와 정서적 연결: 학습공동체는 감정적인 경험이 포함된 특정 이슈를 가지고 이야기를 공유한다.
- ▣ 교회 공동체의 의미
- 교회라는 말이 복음서에서는 마태복음 16장에서 처음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더불어 나타난다. 그 고백의 장소는 가이사랴 빌립보다. 갈릴리에서 북쪽으로 약 45분쯤 자동차를 타고 올라가면 헐몬산 기슭의 바니아스라는 곳에 이른다. 헐몬산 자락에서 나오는 이곳의 풍부한 물은 시내를 이뤄 갈릴리 호수로 흘러 들어간다.
- 거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가이샤랴 빌립보란 곳에 이르게 된다. 본래 이곳 주민들은 풍요와 다산의 신인 바알신을, 헬라계 거주민들은 산림과 야수의 신인 판신을 섬겼다. 당시 헤롯왕은 로마정권에 아부하기 위해 로마황제 숭배 신당을 세워두었다고 한다. 이것은 이 장소가 당시 우상의 땅이었음을 시사한다.
- 왜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곳까지 오게 했을까. 3년간의 제자훈련이 거의 마감돼 가는 시점에서 주님은 제자들을 이 의미 있는 장소로 데리고 오셔서 졸업종합고사를 치르게 하셨다. 그때 출제하신 문제 중 하나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것이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같은 베드로의 대답에 대해 예수님은 “복이 있다”는 칭찬과 더불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알게 하신 것”이라 하셨다.
-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 신앙고백을 통해서 예수님은 자신의 교회를 세울 것임을 보이셨다. 이것을 위해서 주님은 이 땅에 오셨던 것이다.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서 예수님이 바알신과 판신, 그리고 로마황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더불어 이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공동체는 신들과 로마황제와 비교되지 않는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선포하시려는 의도가 계셨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주님의 교회는 주님의 승리를 경축하는 공동체요, 자유케 하는 열쇠꾸러미가 맡겨진 공동체인 것이다. 이 공동체는 사도행전 2장에서 발견된다. 예수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으심, 부활, 그리고 승천 후에 성령의 강림으로 역사에 출현된 공동체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묶여있는 영혼들을 풀어내어 자유케 하는 교회, 즉 주님의 사역을 재현하는 교회였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이끌고 오셔서 시험을 치르신 장소, 그리고 장차 세우시고자 하시는 교회에 대한 설계도를 발표하신 장소가 바로 가이샤라 빌립보다. 오늘의 교회들이여! 때때로 그 자리로 나아가자. 그리고 주님께서 발표하신 교회에 대한 그 음성을 다시 듣자. 그리고 설계도를 살펴보자. 우리가 바로 그 주님의 교회인지를 말이다.
- /조갑진(서울신대 교수)
- ▣ 공동체, 하나님의 응급실
- 나는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인간의 절박한 사정을 돌아보아 주는, 작지만 감동적인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었다. 주택가의 그 작은 교회는 특별한 게 없었다. 예배도 별반 활력적이지 못했고, 목사님의 설교도 그만저만한 정도였다. 그러나 한 사람, 데보라 베이츠에게만은 교회가 응급실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다.
- 데보라의 남편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녀에게는 부양해야할 네 아이와 초라한 방 한 칸만이 짐처럼 남았다. 데보라는 버림받았다는 감정을 추스르는 것 외에도 당장 실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천장에서는 빗물이 떨어졌고, 막힌 하수구에서는 구정물이 올라왔으며, 고물차는 당장이라도 주저 앉을 지경이었다. 누군가 장기간 돌보아 주어야 했다. 그러자 그 작은 교회에서 약 스무 명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들은 돌아가며 데보라의 아기들을 돌보았고, 칠을 다시 했으며, 지붕과 차를 수리했다. 한 사람은 그녀를 고용해 새로운 일을 가르쳤다. 형평이 넉넉한 한 부인은 아이들의 교육비를 대겠다고 제안했다. 데보라는 적어도 5년간을 교인들이 마련해 준 '목발'에 의지해 걸어 다녔다.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데보라와 같은 여인들. 고향 인도에 두고 온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월급을 보내는 고달픈 여인, 음란물을 찍어 내는 인쇄소를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잡지 못해 시름겨운 남자. 근육병에 걸려 사람들의 등에 업혀서야 성찬대 앞으로 나온 안타까운 처녀.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면 누가 이들의 눈물을 닦아 줄 것인가!
- -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 필립 얀시
- ▣ 신앙 공동체
-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위한 봉사에도 단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서로 화합하여 봉사하는 정신과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태인 철학자 마틴 부버는 "나와 너"란 책에서 사람이란 말의 어근이 "서로서로"란 말에서, 곧 나와 너와의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서로서로 화합하여 봉사할 때의 기준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을 절대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스튜어트 아베리가 쓴 책 "느헤미야를 통해 본 참 지도자론"에서 "서로"란 용어에 붙은 여러 가지 아름다운 생활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서로 돕고 서로 지지해주며 함께 모든 일에 참여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그 중에 몇 가지를 지적하였다. 서로 위하여 기도하라(엡5:19). 서로를 격려하라(히10:24, 25). 서로 대화하라(엡5:19). 서로 봉사하라(갈5:13). 서로 친절을 베풀라(롬12:13). 서로 사랑하라(요일3:11) 우리는 모두 서로 봉사함은 물론 모든 일상생활에서 화합을 위해 힘쓸 때 지체로서의 아름다운 사명을 다하게 될 것이다.
- * 기도: 만물을 자라나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주님, 나를 분별 있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화평으로 열매 맺는 자로 자라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 받는 자 되게 하옵소서.
- ▣ 공동체의 은사 활용
- 경영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파레토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조직체든지 대체로 20퍼센트의 사람들이 80퍼센트의 일을 다 한다는 것인데, 가만히 오늘날 교회를 보면 이 법칙이 맞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봉사의 80퍼센트를 20퍼센트의 사람이 합니다. 교회 헌금의 80퍼센트를 20퍼센트의 사람들이 내는 것 같습니다.
-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은사 공동체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가 받은 은사의 청지기로서 봉사하고 섬겨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은사 공동체이며, 교회의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 하나님이 지체들에게 주신 은사는 다양하나 그것을 사용하는 자세는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하나님이 사용하시듯 해야 합니다. 설교자가 설교할 때나 교사가 주일학교에서 가르칠 때, 혹은 평신도가 성경공부를 할 때, 개인의 생각을 말하거나 개인의 능력을 과시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필요한 일을 할 때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인간적인 욕심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많은 일을 해서 업적을 남기는 것보다 그 과정을 통해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사람에게 영광이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 - 「설교하기는 어려워도 설교 준비는 즐겁다」/ 방선기
- * 묵상
- 0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으며, 기도 생활과 사랑의 실천, 남을 대접하는 일들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 0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가지고 선한 청지기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 * 기도: 제게 주어진 은사가 무엇인지 깨닫기 원합니다. 받은 은사를 가지고 교만하지 않게 하시며, 지체를 섬기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을 위해 쓰임 받게 하소서.
- /생명의 삶
- ▣ 코이노니아 공동체 - 시133편
- 하나님은 태초부터 당신의 백성들을 코이노니아 공동체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교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단순히 유일신이 아닌 삼위 일체의 신이십니다. 삼위 하나님은 태초부터 인격적인 교감속에 존재하고 계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들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존재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닮은 존재들입니다. 교제는 그 자체로 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의 교제는 꼭 목표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표 성취와 목표 관리에 의해 지배되는 경영 마인드의 세상에서 목표 없는 만남은 시간 낭비처럼 생각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교제 그 자체를 위해서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거기서 진정한 이해와 사랑이 싹트기 때문입니다. 교제의 장은 능력을 공급받는 장입니다. 순전한 교제의 자리에서 우리는 재 충전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옛날의 제사장 취임식은 기름부으심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제사장의 머리에서 옷깃과 발끝까지 흘러내리는 기름부음은 능력으로 잠긴 사역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름부음은 선배가 후배에게 혹은 서로가 서로에게 행하는 상호 사역이었던 것입니다. 교제는 교제를 낳고 교제의 축복은 나눔을 낳습니다. 약속의 땅에서 가장 높은 헬몬산의 이슬이 바람이 날릴 때면 작은 산(텔)들에 그 축복을 나누는 시간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축복의 나눔은 약속의 땅 전체를 생기있는 활력으로 춤추게 합니다. 성도의 교제가 바로 이런 축복의 나눔터인 것입니다. 교제를 상실한 공동체는 더 이상 건강한 공동체일수 없습니다.
- * 기도: 형제들의 교제를 선하고 아름답게 여기시는 주여, 우리의 교제를 그렇게 축복되게 하옵소서. 아-멘
- /이동원 목사
- ▣ 공동체 우선
- 공동체의식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18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사상가 몽테스키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나는 자신에게 유익하나 가족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그것을 향유하려는 생각을 내 마음에서 뽑아내어 버렸다. 나는 가족에게는 유익할지라도 사회나 나라에 손해가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즉시 그 유익을 포기했다. 나는 나라에 유익하다고 할지라도 전 인류에게 치명적인 손실을 입힌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그것을 범죄로 간주 하고 버리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 ▣ 거룩한 공동체
- 스파르타에서 나온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파르타의 왕이 자기 나라를 방문한 이웃나라 군주에게 스파르타의 성벽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군주는 주위를 아무리 돌아보아 도 성벽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스파르타 왕에게 "당신이 그렇게 자랑하고 있는 성벽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스파르타 왕은 자기의 휼륭한 군대를 가리키면서 "이 사람들이 이 국가의 성벽이며, 모든 사람들은 이 성벽을 이루는 벽돌들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벽돌 한 장이 그대로 떨어져 있는 한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 나 이 벽돌이 건물을 짓는 데 사용될 때 요긴하게 쓰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목적과 의미를 알 때 홀로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함께 신령한 집을 지어갈 때 그리스도인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전쟁시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도 무엇인가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혼자 어떤 일을 시도 했을 때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훈련을 받은 후에 전쟁터에 나가야만 나라를 지키는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성도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송하고 함께 말씀을 배우고 복음을 전할 때에야 비로소 그리스도의 신령한 집을 짓고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거룩한 공동체인 교회의 한 권속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같이 하여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함께 일하고 헌신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 /365영혼의 만나 / 김연택 지음
- ▣ 공동체를 묶는 사랑의 끈
- 나는 복도를 지나갈 때 가끔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장애 학생이 화장실을 향해 휠체어를 밀고 가면 뒤따르던 일반 학생이 화장실 문을 열어 준다. 자폐 성향이 있는 학생이 혼자 서 있으면 일반 학생이 다가가 슬그머니 손을 잡고 함께 걷는다. 흔히 일반 학생이 장애 학생을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장애 학생이 일반 학생의 성숙을 돕는다. 장애 학생은 어떤 훈계도 없이 그 존재 자체로 일반 학생의 자존심과 고집스러움을 꺾어 주고, 언제나 아기처럼 머물고자 하는 유치함을 버리게 한다. 그렇지만 일반 학생이 얻는 것도 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것은 책 몇 권이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사랑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통합 교육을 포기할 수 없다. 지금보다 몇 배의 경제적 손실을 본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항상 말한다. “얘들아, 너희는 장애 학생을 도와주는 게 아니야. 장애 학생은 도움을 받는 게 아니야. 너희는 그냥 함께 살아가는 거야.” 하나님은 나만 부르시지 않고 우리 모두를 부르셨다.
- 「참으로 가벼운 세상 속에서의 진리」/ 찰스 콜슨
- ▣ 공동체로서의 인식
-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스펄전 목사님을 찾아와서 자신의 고민을 꺼내며 이런 요청을 합니다.
- “목사님, 저는 교회 생활하는데 힘이 듭니다. 늘 시험받게 됩니다. 목사님께서 문제없는 완전한 교회 하나 소개해 주세요.”
- 이 때 스펄전 목사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자네가 혹시 그런 교회를 찾으면 나에게 꼭 알려주게. 나도 그 교회 가서 그 교인이 되고 싶네. 그러나 자네는 그런 교회를 찾거든 절대로 그 교회에 속하지 말게.”
- “왜요?”
- “왜냐하면 자네가 끼는 날부터 그 교회의 완전은 깨질 테니까 말이야. 바로 자네 때문에 말이야.” 불완전한 인간이 모여서 형성하는 공동체는 언제나 문제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 문제가 없기를 기대하는 것은 허구적 이상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린도전서 12:25-27)
- ▣ 공동체와 협력
- 본문: 시편 133 장 1 절
-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 철새인 기러기들은 이동할 때 한 줄 혹은 V자 형태로 날아갑니다. 그렇게 기러기가 무리를 지어 나는 이유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유는 무리를 지어서 날면 한 마리가 날아갈 때보다 훨씬 힘이 덜 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앞에 있는 기러기가 날개짓을 하면서 내는 바람이 뒤에 있는 기러기를 올려 주고 또 그 기러기가 내는 바람은 바로 뒤에 있는 기러기를 올려 주어 혼자서 날 때보다 71%나 힘이 덜 든다고 합니다.
-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기러기 떼와 같이 서로에게 상승 작용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모여서 서로 격려하고 세워 주어 보다 나은 하나를 이룰 수 있어야지, 한데 모여 헐뜯고 싸워서 공동체를 파괴한다면 차라리 모이지 않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된 그리스도인의 형제 관계는 참으로 아름답고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서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속한 교회 내의 공동체 혹은 교회 밖의 공동체에서도 우리는 형제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님께서 그 공동체에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일에 서로 긴밀하게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 * 기도 : 그리스도인들이 참다운 사랑과 협력을 이룰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 ▣ 공동체, 협력에 관한 성경 말씀
- 0 그대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그대에게 너무 중함이라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출18:18)
- 0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133:1)
- 0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 9-12)
- 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 0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2:46)
- 0 몸 가운데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고전 12: 25)
- 0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2:12)
- 0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 0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히12:15)
- 0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7)
- ▣ 협동, 협력, 공동체에 관한 금언
- 0 현재의 인간사회에서는 가능하다면 임금계약이 이미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임금생활자와 고용자 모두에게 많은 이득이 되도록 시도된 바 있는 협력 계약으로 다소 수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방법에서는, 임금 생활자는 소유권이나 경영, 혹은 이득에 보다 많이 참여하게 된다.(교황 피우스 11세)
- 0 보편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어느 국가도 고용주와 고용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의 부단한 모든 국민의 부단한 노력 없이 곤궁과 빈곤에서 보다 잘 사는 국가로 일어서지 못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두뇌. 자본 노동력이 하나로 결합되어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인간의 수고는 정당한 결실을 맺지 못한다.(교황 피우스 11세)
- 0 위대한 뉴욕의 8백만 시민들이 평화와 위엄 속에서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발전시켜왔다는 사실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뉴욕의 모든 고층 빌딩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이다.(데이비드 릴리엔 텔, 미국 행정관. 작가)
- 0 하나님은 인간에게 두 손을 허락해 주셨다. 오른 손은 오른쪽의 사람의 손을 붙잡고, 왼손은 왼쪽의 사람을 붙잡고 서로 협조하라는 뜻일게다. 그런데 고집쟁이 인간은 이웃의 손을 붙잡지 않고 자신의 왼손과 오른 손을 붙들고 있으므로 들어오는 복을 잡지 못한다.(김경선 )
- 0 오늘날 모든 회사가 공공의 관심을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인식되어 있다. 회사의 관리자는 주주뿐만 아니라 노동자, 공급자, 구입자, 최종 소비자도 생각하여야 한다. 우리의 경제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체인과 같다. 고도로 산업화된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우리 모두가 함께 일어서거나 함께 쓰러진다. 0 어느 지방, 교구, 국가, 이웃, 가족 혹은 개인도 다른 이들을 배제한 채 유익하게 살 수 없다.(랄프 타일러 플리웨링)
- 0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서로 미워하나 그들이 같은 배를 타고 가다가 바람을 만나게 되면 서로 돕기를 좌우의 손이 함께 협력하듯 한다는 말을 오월동주(吳越同舟)라 한다.
- 0 교회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모든 교우가 합심하여 하나님께 매달릴 때, 하나님은 어려운 문제를 눈과 같이 사라지게 할 것이요,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는 결과가 될 것이다.(한경직)
- 0 하나의 힘과 둘의 힘을 합하면 셋의 힘이 되는 것이 힘의 원리로되, 협동의 원리는 넷이나 다섯의 힘이 생기는 것이요, 한 사람의 두뇌보다 두 사람의 두뇌를 합하면 엄청나게 큰 결과를 가져온다.
- 0 고용주나 피고용인이나 모든 시민이 힘을 합하고 마음을 합하여 공통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나라의 힘이 여러 갈래로 분산되기 때문에 위대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두뇌와 자본과 노동이 공동 노력을 위하여 합치지 않는다면 인간의 수고는 아무 결실을 맺지 못한다.
- 0 내 힘만 의지해서 애쓴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 주님과 나, 주님의 소유와 나의 소유가 협력하면 천국을 건설하면서 부딪힐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
- 0 공동의 노동은 서로 대립된 사람을 융합시킨다.
- 0 우리는 함께 갈 때 훨씬 빨리 갈 수 있다.(마틴 루터 킹)
- 0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아리스토텔레스)
- 0 교회공동체 안에서 열심히 일해도 몰라줄 때 사단은 서운한 마음을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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