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말일에 샛노란 은행잎과 새빨갛게 빛나던 단풍잎이 며칠 사이에 곤두박질 치고 살발려먹은 고깃뼈처럼 앙상한 가지만 찬 바람에 몸서리친다. 그 푸르던 칠엽수 마로니에 잎과 큼직한 오동나무 잎 뚝뚝 떨어지니 황혼길에 접어든 나그네 텅 빈 가슴 헌옷처럼 찢어진다. 몇해 전만 해도 이런 날에는 막연한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가을빛 공원을 뒤덮을 때면 앞집 소녀가 한없이 그리웠었다. 늦가을 분위기에 휩싸일 때면 고개 내미는 진한 추억들이 내 손을 이끌고 옛 마을앞에 세웠는데 이제는 그리움도 시들어진 마음에 찬비만 하염없이 내린다. 검은 구름은 어디론가 바삐달려가고 낯선 사람들 총총(悤悤)히 사라지듯 늙는 얼굴 허망한 인생 올해 11월은 빈집만큼 쓸쓸하다. 2023,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