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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늙은 비둘기들이
탑골 공원에 우굴 거린다.
병든 날갯죽지를 질질 끌며
동정어린 눈빛으로 서성인다.
더러는 파닥거리며 별빛 눈동자가 빛나지만
육십삼 층을 훌쩍 뛰어 넘어
남산타워를 활개 치던 때는 지나갔다.
휘청거리는 지팡이에
얼기설기 얽힌 힘줄을 붙들어 매고
느린 걸음으로 종로 골목을 기웃거린다.
그토록 춥던 겨울을 생각하면
대서(大暑)가 석 달쯤 되었으면 좋겠다한다.
다리 저는 비둘기가 힘없이 걸어온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지만 무리 속에 몸을 숨긴다.
더러는 슬프게 울고 있다.
쉰 목소리가 처량하기만 하다.
가래 끓는 기침소리가 신경을 자극할 때면
플라타너스도 비둘기 냄새가 아프다.
어제 본 비둘기가 안 보여도
익숙한 비둘기들은 안타깝지도 않다.
닳은 태양이 서대문을 지나갈 때쯤이면
비둘기 들은 낡은 벤치에서 일어난다.
각기 제 갈 길을 찾아
내일의 기약도 없이 사라진다.
오래 된 가로등이 불을 밝힌다.
하늘에 어두운 별이 뜬다.
20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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