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설교/2026년 설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막9:23-29)

신사/박인걸 2026. 4. 18. 11:40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9:23-29)

 

(서론)

버트런드 러셀은 근대사의 결정적 사건으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다윈의 진화론, 레닌의 공산주의 국가 건설, 그리고 프로이트의 무의식 발견을 꼽았습니다.

특히 인간에게는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잠재의식이 존재하며, 천재조차 그 능력의 10% 내외만 활용할 뿐 나머지는 미개발 상태로 남아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잠재의식보다 더 크고 넓은 영역은 바로 영적(靈的)인 세계이며, 이를 움직이는 핵심적인 동력은 믿음의 힘입니다.

이를 증명하는 삶의 사례로 전재경 박사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7세에 실명한 후 혹독한 시련을 겪었으나, 신체적 한계와 역경(逆境)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서울맹아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20년 동안 맹인 전용 도서관을 오가는 고단한 수행 끝에 50세의 나이로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전 박사의 승리는 단순히 개인의 의지를 넘어,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와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신앙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았음을 말해줍니다(엡 2:10).

역사 속 승리자들처럼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때, 믿음은 불가능한 상황을 가능으로 바꾸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결국 인간의 잠재력을 완성하는 마지막 열쇠는 영적인 힘, 즉 신앙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 창조 받은 인간은 이성을 뛰어넘어 영적 능력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신앙은 영적 영역이며, 이 영역에서 믿음을 가지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오늘은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는 제목의 설교를 합니다.

(전환문)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는 문장의 다른 말은 불가능은 없다. 혹은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1. 문제를 주님께 가져와야 합니다(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17).

(본문배경)

본문은 변화산 사건 직후, 귀신 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제자들에게 고침을 받지 못해 절망하던 중 예수님을 만나 치유받는 장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들의 아버지는 물과 불에 뛰어드는 아이의 고통을 호소하며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도와달라.”고 간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는 준엄한 말씀으로 그의 미약한 신앙을 일깨우십니다.

아버지가 즉시 자신의 믿음 없음을 회개하며 도와달라고 부르짖자,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시고 아이를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한 가정의 불행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기쁨과 행복으로 바뀐 위대한 역사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죄와 질병, 마귀의 사슬에서 해방하시고 구원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불가능한 상황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겸손과, 주님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는 확고한 믿음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나오라)

인생의 한계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 받는 비결은 간절한 소원을 품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본문의 아버지는 아들을 고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열정으로 주님을 찾았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 뜨거운 마음을 보시고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소원을 가진 자를 통해 일하시며, 그 마음의 간구를 만족하게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한나의 서원 기도와 수로보니게 여인의 간청이 응답받았듯, 우리의 소원은 메마른 땅에서 물을 끌어 올리는 마중물과 같습니다.

세상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고통과 문제가 있다면, 이를 정욕이 아닌 거룩한 열망으로 바꾸어 주님 앞에 내어놓아야 합니다.

믿음의 씨앗인 소원을 가슴에 품고 나아갈 때, 주님은 독수리 같은 새 힘을 주시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모든 해결의 시작은 주님 앞에 서는 것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실화)

카네기는 가난한 이민자 출신이라는 역경 속에서도 모든 직원이 예금통장을 갖게 하겠다는 간절한 소원을 품었습니다.

그 결과, 강철 왕으로서 부를 이룬 것에 그치지 않고 수만 명의 직원이 행복을 누리는 복지 사회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민족 말살(抹殺)의 위기 앞에 금식기도로 매달려 자기 민족의 하만의 음모(陰謀)에서 구원하였습니다.

또한 구세군의 윌리엄 부스는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만 대의 매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뜨거운 영적 소원을 가졌습니다.

이 간절함은 안일한 시대적 흐름을 깨고 전 세계적인 구호와 선교의 물결을 일으키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이 세 인물의 삶은 주님 앞에서 품은 선한 소원이 단순한 희망을 넘어 불가능한 현실을 타개하는 강력한 힘이 됨을 증명합니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직면한 삶의 장벽과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는 결코 절망의 이유가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을 만날 가장 복된 기회입니다.

본문의 아버지는 세상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아들의 고통을 안고 직접 주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라는 의심마저 거두어내고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라고 부르짖었을 때, 가문의 불행은 찬송의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슴 속에는 지금 어떤 마중물이 있습니까?

에스더의 민족 사랑의 생명을 건 기도나, 윌리엄 부스의 영혼 사랑처럼, 정욕이 아닌 하나님의 선한 뜻을 향한 거룩한 소원을 품으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운명을 비관하는 탄식보다,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며 내어놓는 그 간절한 소원을 통해 일하십니다.

인생의 어두운 터널 속에서 홀로 쩔쩔매지 마십시오.

모든 질병과 사단의 결박을 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여러분의 문제를 그대로 가져오십시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겸손과 주님을 향한 불타는 소원이 만날 때, 여러분의 삶에도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기적의 역사와 독수리 같은 새 힘이 부어질 것입니다.

믿음은 주님 앞에서 소원을 현실로 바꾸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삶의 힘든 문제나 간절한 소원이 있다면 주님 앞에 가지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반드시 해결하시고, 들어주십니다.

(전환문)

삶의 어떤 문제라도 주님 앞에 가지고 나와야 해결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또 무엇입니까?

 

2. 주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22,29).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22).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29).

(기도의 성격)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해 당황해하는 제자들에게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시며, 오직 기도만이 악한 영의 세력을 꺾는 유일한 무기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입니다.

현금이나 세상의 그 어떤 자산보다 강력한 영적 자원입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두려움은 사라지고 담대함과 용기가 생겨나며, 불가능해 보이던 문제들이 해결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비록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생소하게 보일지라도, 성도에게 기도는 생명과도 같은 승리의 열쇠입니다.

(성경신학적 기도)

성경 신학적 측면에서 기도는 인간의 요구를 관철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언약에 참여하는 거룩한 소통입니다.

타락 이후 단절되었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 회복되었으며, 이제 기도는 성령 안에서 하늘 지성소로 나아가는 제사장적 권리입니다.

즉, 기도는 나의 뜻을 하늘에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나의 의지를 그분의 섭리에 굴복시키는 신앙의 정점입니다.

영적인 측면에서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움직이는 실제적인 동력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과 연결되는 통로이며, 우리 내면의 잠재의식을 넘어 성령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초자연적인 경험입니다.

기도는 악한 영의 결박을 끊어내고 심령의 어둠을 몰아내며, 불안을 평안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영적 마스터키와 같습니다.

결국 기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연합을 통해 우리 존재의 근원을 새롭게 하는 가장 강력한 생명의 역사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기도 방법)

성경은 상황과 형편에 따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다양한 기도 양식을 보여줍니다.

첫째, 부르짖는 기도(통성기도)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처럼 위기 속에서 간절히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십니다.

둘째, 눈물의 기도입니다.

히스기야 왕이나 한나처럼 통곡하며 드리는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며 상한 심령을 치유하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셋째, 금식과 작정 기도입니다.

다니엘이나 에스더처럼 생명을 걸고 절제하며 드리는 기도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합니다.

넷째,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골방 기도(은밀한 기도)입니다.

다섯째, 성령 안에서 무시(無時)로 드리는 무시 기도가 있습니다.

어떤 형식이든 중요한 것은 중언부언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믿음으로 구하는 태도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과 깊이 연결하는 영적 통로가 됩니다.

(개인의 현실)

성경은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권면하며,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이 기도의 제목임을 가르칩니다. 기도는 사소한 일상의 고민부터 거대한 인류의 문제까지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거룩한 위탁입니다.

우선 성도는 내면의 영적 성장과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삶의 근간을 세우는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삶의 구체적인 현장인 물질과 사업의 문제, 자녀들의 미래와 진로, 그리고 가슴 깊이 품은 꿈과 비전을 주님 앞에 가져가야 합니다.

우리의 육체적 건강과 가정의 평안 또한 주님의 돌보심이 필요한 핵심적인 간구 제목입니다.

더 나아가 기도의 지경을 넓혀 교회의 부흥과 영적 성장을 위해, 그리고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국가와 민족의 안녕을 위해 부르짖어야 합니다.

특히 전 세계적인 고통인 전쟁의 종식과 평화를 구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성도의 사명입니다.

크고 작은 모든 문제를 기도의 마중물로 삼을 때, 주님은 우리의 소망을 넘어선 놀라운 응답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단순한 종교적 형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실제적 동력입니다.

주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라고 선포하시며, 우리 삶의 막힌 담을 허무는 마스터키가 오직 기도임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나의 뜻을 관철하기보다 하나님의 섭리에 나를 맞추는 거룩한 소통을 시작하십시오. 개인의 건강과 경제적 문제, 자녀의 미래와 같은 일상의 간구부터 국가와 민족, 세계 평화를 위한 중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주님께 위탁하십시오.

부르짖는 기도와 눈물의 간구로 하늘 보좌를 움직일 때, 우리를 얽맨 어둠의 세력은 떠나가고 불가능은 가능으로 바뀔 것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오늘 기도로 승리의 문을 여시길 축복합니다.

(전환문)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3. 우리 주님이 해결할 것을 믿어야 합니다(23,24).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23,34).

(소년 아버지의 태도)

본문은 절망에 빠진 아버지가 예수님을 대면하며 막연한 기대에서 확신에 찬 믿음으로 변화되는 복음적 여정을 잘 보여줍니다.

처음 아버지는 제자들의 실패를 목격하며 영적 회의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이라는 조건부 도움을 구합니다. 이는 문제의 크기에 압도되어 주님의 전능하심을 제한하는 우리 모두의 연약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라며 그의 시선을 상황이 아닌 전능자에게로 고정시키십니다.

이때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부르짖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믿음은 내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겸손에서 시작됩니다.

주님은 그의 완벽한 믿음이 아니라, 부족함을 고백하는 그 정직한 믿음의 태도를 보시고 아이를 치유하셨습니다.

여러분, 기적은 내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주님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믿음 없는 것을 도와달라.”고 정직하게 소리 지르십시오. 기도로 주님께 매달릴 때, 우리의 작은 신뢰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하늘의 능력과 연결될 것입니다.

(믿음이 중요한 이유)

성경 신학적 관점에서 믿음은 단순히 심리적인 확신이나 긍정적인 사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인간의 한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영적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뢰의 고백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반드시 그분의 살아계심을 믿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기적은 인간의 수단이 아닌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이며, 믿음은 그 개입을 허용하는 영적인 '예(Yes)'입니다.

둘째, 믿음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권능을 수용하는 도구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하신 것은, 믿음이 인간을 전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주님의 능력이 믿는 자를 통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셋째, 믿음은 영적 질서를 회복합니다.

불신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지만, 믿음은 그 장벽을 허물고 하늘의 자원이 이 땅의 문제로 흘러 들어오게 하는 마중물이 됩니다.

결국 기적이 일어나는 데 믿음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무능함을 하나님의 가능성으로 옮겨놓는 유일한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중요성)

히브리 11장 33절 이하에 보면 그들은 믿음으로” “전쟁에 승리하고, 사자의 입을 막기도 하고 다니엘의 믿음을 말합니다.(단6:22)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고(단3:25),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칠 배 뜨거운 풀무에서 구원받은 것이 믿음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왕상17:22,왕하4,35), 사르밧 여인과 수넴 여인은 죽은 아들들이 엘리야와 엘리사의 기도로 살아났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수많은 기적과 이적들과 신기한 능력들이 모두 믿음의 결과라고 말씀합니다(히11:36-40).

주님은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고 하였습니다.

(적용과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인간의 무능함을 하나님의 전능함으로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성경 속 수많은 기적의 주인공들은 뛰어난 능력을 갖춘 자들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사자의 입을 막고 풀무불의 위협을 이겨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대단한 확신이 아닌, 겨자씨 한 알만큼의 정직한 신뢰를 요구하십니다.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울부짖었던 소년의 아버지처럼, 우리의 연약함을 주님 앞에 솔직히 고백합시다.

기적은 내 의지의 크기가 아니라, 전능하신 주님의 손을 붙잡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기도의 마중물을 붓고 믿음의 열쇠를 돌릴 때, 산을 옮기는 역사가 여러분의 가정과 삶의 현장에 일어날 것입니다.

오직 주님이 해결하실 것을 믿고, 그분의 무한한 가능성 안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승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026,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