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죽음의 밭에서

신사/박인걸 2025. 5. 21.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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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밭에서
  •  
  • 씨앗은 어둠 속에 터를 잡고
  • 그 주변엔 부서진 잎맥의 뼈가 쌓인다.
  • 한 시절 바람을 맞고 꺾인 줄기는
  • 허물어진 꽃잎의 무덤에 깔려 있다.
  •  
  • 눈이 아리도록 곱게 핀 꽃은
  •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노래이며
  • 짙푸르게 자란 수풀 속에는
  • 즐비한 죽음이 발길에 차인다.
  •  
  • 한 조각 고기를 굽는 불판 위에
  • 억울한 생명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 풀 뜯던 착한 암소의 눈물이
  • 기름 연기에 섞여 슬픔으로 피어오른다.
  •  
  •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삼키는 음식은
  • 어느 가여운 생명의 주검이며
  • 생존을 위한 한 끼 식사는
  • 어떤 죽음을 씹어 삼키는 일이다.
  •  
  • 지고 피고 다시 피고 지며
  • 먹고 먹히며 잡히고 다시 먹는
  • 이토록 기막힌 질서 속에
  • 오늘도 나는 죽음의 밭을 밟고 간다.
  • 202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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