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연해주 벌판

신사/박인걸 2019. 9. 4. 09:58

연해주 벌판

 

시야에 산()은 보이지 않는다.

사방으로 펼쳐진 평평한 저 공간에는

낯 설은 잡초들만 나부끼고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地平線)에는

꿈에서 누리던 고요함이 가득하다.

 

나는 지금 연해주 땅을 밟고

피란 온 선조(先祖)들의 족적을 따라

피눈물을 쏟던 구술(口述)을 들으며

한숨이 절로 튀어나오는 옛 집터에서

망향가를 부르던 촌로(村老)를 떠올린다.

 

두만강(豆滿江)을 건너 향방 없이 걷다

인적 없는 벌판에 초막을 짓고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고

새벽이슬을 맞으며 땅을 일구어

국적(國籍) 없는 야인으로 살았단다.

 

! 슬프다 한없이 슬프다.

내 나라 내 터전을 빼앗긴 채

발이 부릅뜨도록 걸어 주저앉은 땅이여!

눈물에 밥을 지어 한숨을 반찬삼아

들짐승처럼 살았다던 선조의 넋이여

 

아카시아뿌리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이 땅에 살아남은 꼬레아스키들이여!

장하다 우리의 동포들이여!

벌판을 가로질러 우수리스크로 달릴 때

선조들의 영혼이 따라오는 듯하다.

2019.9.4